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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편집부 ) (2011-05-06 18:32:35) |
2. 아인시타인의 폭 넓은 독서와 사회주의
오늘날 학문의 혁신은 학제간(interdisciplinary)을 넘어 원융회통(transdisciplinary:환원주의적인 E. O. Wilson의 통섭-Consilience-과는 다른 접근방식으로 여러 분과학문을 가로지르는 접근방식. 원효대사가 실천한 교리적 입장인 圓融會通이 지향하는 바와 상통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을 통한 통합학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인시타인은 자신의 전공인 수학-물리학-천문학에만 매몰되지 않고 폭 넓은 공부를 했습니다.(Peter Galison 외 3인 편집,
그는 스위스의 정치와 문화사(그는 추리히 공대생 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선사시대 역시 수강합니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대국굴기(산이 솟구치듯이 국제적으로 일어섬)하는 중국의 정치-경제와 제자백가 사상 그리고 진화 심리학을 학습하는 자세와 통합니다.
나아가 그는 자유경쟁의 사회적 결과, 금융과 주식교환, 통계학과 사 보험, 그리고 국민경제의 토대까지 수강합니다. 아인시타인이 오늘날의 물리학도라면 첨단 수학을 동원하는 파생상품을 비롯한 금융투기의 사악한 영향, 산지가 7/10에 이르는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동산 투기와 골프장 조성이 민생을 파탄시키는 문제, 사대강 사업과 생태계의 파괴가 미래세대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성 장애(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와 함께 자연애호 결핍증(Nature Deficit)을 초래하는 현상, 신 자유주의와 공기업 사유화가 끼치는 고용 없는 성장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가속화, “양자(quantum)의 모순”과 인간의 자유의지, “비 선형적 사고”에 필요한 논리-철학적 문화((Michel Bitbol의 <
그뿐만 아니라 그는 대학원 과정에서 만난 Solovine과 Habicht와 “아카데미 올림피아”라는 독서클럽을 조직해서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기초인 리만의 기하학, 상대성 이론에 거의 근접했던 앙리 푸엥카레의 <<과학과 가설>>등 수학과 물리학에 관한 책은 물론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한 사람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흄의 <<인간성론>> 그리고 내가 청소년기에 감명을 받기도한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읽고 이웃을 화나게 만들 정도로 밤 늦게까지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밤과 축일에는 실내음악 합주단과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하는 학창생활을 영위합니다.
한국인들은 홍대용이 이미 지적했듯이 “대체로 기운이 치우쳐 있는” 성향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의 분업과 전문화에 따라 “더욱 악화된 생각의 터널효과” 탓에 현실의 전체 실상을 놓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런 우매함을 장자는 “자기 직업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라며 자기성찰의 부족과 그 황량함을 개탄합니다. 삶과 과학 전체의 실상을 성찰할 때 비로서 진정 “개성 있는 자유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아인시타인은 카이스트의 대학생들은 물론 한국의 대학생들에 비해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픈 삶의 자세는 “어떤 장소(상황)에 있든 삶의 주인이 되라”(隨處作主:수처작주)는 것입니다. 카이스트의 반이성적 권위주의적 분위기를 학생들 스스로 변화시키려 노력해야하며 그런 실천은 아인시타인처럼 주 전공을 넘어서는 학습을 통해서 삶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그런 인식에 입각한 “삶의 의미의 절실함”을 정서적으로 체화하고 실천함으로써 용기와 이성적 자기확신의 심화를 동반하게 됩니다.
요컨대 대학생들은 일제시대 이래 뿌리내리기 시작한 군국주의적 권위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세계관을 신봉하는 사회세력에 의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성과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도질당하고 있음을 “과학적이며 정의로운 열정과 패기”로 직시하고 현실변혁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조성해야 합니다.
아인시타인은 그런 진지하고 비판적인 학습을 통해서 반 파시스트적이며 사회주의적 입장을 용기 있게 실천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기탄없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합니다. 그는 1949년 5월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창간한 월간
{사회악의 진정한 뿌리는 경제적 무정부상태에, “합법적인 경제적 잉여의 착취”에 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의 유일한 타개책은 “사회주의 경제의 수립”이다. 이와 함께 필수불가결한 것이 교육개혁이다. 그것은 개개인의 능력개발뿐만 아니라 상호부조의 이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권력과 성공을 영광시하는 가치관을 대체해야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개인의 완전한 노예화 역시 진행시킬 수도 있으므로 정치-사회적 난제를 초래하는 관료주의가 뿌리 내리는 사태의 해결이 사회주의에서 중대하다. 현실 위기의 성격은 “이기주의에 갇혀 개인주의적 생존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학교교육과 언론-출판을 통해서 경제적 자유주의의 “무자비한 무한경쟁”과 “능률” 그리고 이것을 통한 “성공”을 숭배하기에 이른다. 교육의 목표는 “삶의 진정한 의미가 사회에 봉사하는 것임을 천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2011년 반인간적이며 비정한 개인주의가 창궐하는 한국사회를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아인시타인의 사회주의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의 종교관을 이해해야합니다. 그는 “개인주의라는 감옥”의 극복방안으로 “우주적 종교감정”을 제시합니다. 그의 종교관은 특히 한국의 개신교와는 전적으로 인연이 없는 것이며 신인동형(神人同形)적 인격신과도 격이 다릅니다. 그의 종교관은 스피노자의 철학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불교가 자신이 생각하는 종교관에 가장 가까운 종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心心山川이었기에 그는 1929년 1월6일 레닌의 별세 5주년을 맞이하여 이런 심정을 밝힙니다. “나는 레닌을 한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송두리 채 희생하면서 사회정의를 실현시키는 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바친 한 사람으로서 존경합니다. 그의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인류양심의 수호자들이며 혁신자들 이라는 것”.(D. Rowe 외 2인 편집, <
3.정의로운 감정이입의 心心山川을 향하여
純其心者(순기심자) 瞢其識(몽기식) 마음이 순수한 자는 식견이 어둡고
富其才者(부기재자) 廧其行(장기행) 재주가 많은 자는 그 행실이 보잘 것 없다.
정조대의 실학자로서 지전설(지동설)을 주창하며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여 세상을 구제하고자한다”(澄心救世:징심구세)는 뜻을 품고 ”공정한 마음으로 보고 다른 사상을 두루 받아들인다(公觀倂受:공관병수)는 열린 정신을 지니고 살아간 담헌 홍대용이 당대 인간세태를 이렇게 평합니다.(박희병 편역, <<선인들의 공부법>>, 창비). 유리 가가린이 1961년4월12일 발사된 지 57분 된 순간 “지구 지평선을 볼 수 있습니다. 푸른 후광이 아름답습니다” 라고 감격어린 평을 한 이 푸른 행성이 인터넷으로 전자촌이 되고 생명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경이로운 과학기술 혁명의 시대에도 특히 이 나라의 순진한 민초들은 식견이 어둡고 재주 있는 자들 중 적잖은 놈들이 “합법적 범죄자 놈들”이지요. 한국사회가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국가”가 되려면 “재주가 뛰어나면서 큰 덕을 지닌”(才勝博德:재승박덕)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할 것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 모든 시대의 현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다준 어려운 일은 이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르침을 인간의 감정에 큰 영향을 끼쳐서 개개인 심리에 있는 원초적 힘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A. Calaprice, <
감정교육에서 씨앗이랄 수 있는 것이 감정이입(Empathy)입니다. 감정이입을 통해서 피착취자들과 피억압자들의 입장에서 현실을 이해함으로써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동시에 정의감 그리고 불의를 극복하고자하는 용기가 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감정이입은 용기 있는 자비심의 기초입니다. 감정이입은 “인지적” 감정이입과 “정서적” 감정이입으로 구성됩니다.(
자본주의의 반 인간성 나아가 반 생명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소외(Alienation)된 삶 그리고 만사를 분절적으로, 반 변증법적이고 반 연기론적으로 보는 사고방식(Reification)"의 표현입니다. 그럼으로써 자기 중심적 개인주의와 자기애(Narcissism) 그리고 경제 환원론적 사회의식이 만연하게 되며 협력과 공생을 냉소하는 공동체 파괴적 무한경쟁의 강박적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최근의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과학-기술의 혜택은 경제 동물적 인간(Homo Economicus)관과 결탁한 정치권력 그리고 가치관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입니다. 인류는 역사상 그런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서도 경악스런 빈부격차를 방치하고 있으며 지구 생태계 자체의 파국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런 심각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진화론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 뿌리를 내려온 “공격적 경제동물성, 연기적 총체적 실상에 맹목적인 이기주의적이며 사물화된(Reified) 사고방식의 비정함”의 목을 칠 수 있는 “정의로운 감정이입에 기초한 용기, 탐욕과 미움에서 해방되어 ”있는 그대로의 실상 전체를 볼 수 있는(如實知見:여실지견)“ 연기적 사고방식 그리고 협력할 줄 아는 인간성을 발휘하며 그런 인성교육을 심화함으로써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뜻을 공유하고 있는 학자들은 새로운 신경과학의 성과를 진화론적 관점 그리고 성찰하며 자비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철학적 통찰들과 통합적으로 원융하려는 사상적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폭 넓은 식견을 보시(布施)해온 J. Rifkin의 <<감정이입이 충만한 문명>>(The Empathic Civilization), 하버드 대학교의 수학자이자 생물학자인 M. Nowak의 <<비범한 협력자들:이타주의, 진화,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Super Cooperators), 탁월한 영장류학자인 F. de Waal의 <<감정이입의 시대>>(The Age of Empathy)는 그런 사상적 정진들 중 극히 일부입니다.
자본주의라는 이 “더럽고 탁하며 불의스런 세상(汚濁惡世:오탁악세)에서 과학기술자들을 비롯한 사상과 예술의 엘리트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 엘리트들의 사회적 책임을 모범적으로 실천한 분이 짧게나마 거론한 아인시타인 박사입니다. 그 분은 ”예, 나는 늙은 혁명가입니다.......정치적으로 나는 여전히 불을 내뿜고 있는 베수비우스 화산입니다“라고 서거하기 약 1년 전 마르지 않는 패기를 보여줍니다. 가장 바람직한 과학자들의 심심산천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닙니까?
카이스트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젊은 과학-기술 학도들은 “방정식의 정치 그리고 정치의 방정식”을 심사숙고해야할 절박한 책임이 있습니다.
약 250년 전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한 분들 중 한 분인 담헌 홍대용의 자세를 ”옛 것을 본 받아 새로움을 창조한다(法古創新:법고창신)“는 관점에서 받아들인다면 이제껏 내가 주장한 바와 상통하지 않을까요?
“天下之富 不能以淫其志 (천하지부 불능이음기지)
천하의 부도 그의 뜻을 움직이지 못하고
陋巷之優 不能以改其樂 (누항지우 불능이개기락)
가난의 근심도 그 학문하는 즐거움을 그만 두게 하지 못하며
天子不敢臣 諸侯不得友(천자불감신 제후부득우)
천자도 감히 그를 신하로 삼지 못하고 제후도 감히 그를 벗으로 삼지 못하며
達而行之 卽澤加於四海(달이행지 즉택가어사해)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할 경우 그 혜택이 온 세상에 미치고
退而藏焉 卽道明乎千載(퇴이장언 즉도명호천재)
세상에서 물러나 숨을 경우 그 도가 천년 동안 빛을 발하는 사람이라야
然後乃吾所謂士也(연후내오소위사야)
내가 말하는 선비다.“
글쓴이:
최형록 (전)사회민주주의 청년연맹 지도위원, (전)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전) 민중회의 기관지 편집위원장,
(전) 진보평론 편집위원, 정보통신연대 INP (녹두신문)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