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원(전주 완산고등학교 경제교사·사진)
“전북교육청과 어린이집은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로 적이 아니라 동지적 관계임을 잊지 말아야”
“전북교육청, 대중적 공감으로 박근혜 정권의 분할통치에 대응해야”
“어린이집, 공공복지정책을 개인적 이익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공익적 취지에 맞지 않아”
“시민사회단체, 지역교육의 쟁점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중재하고 설득해야”
전북지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대한 예산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난 10월 11일 전라북도는 누리과정 예산 141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교육이든 보육이든, 책임소재가 박근혜 정권이든 김승환 전북교육청이든 헌법에서 보장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한 점에서 긍정적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분리하여 지원규정을 다르게 한 제도의 탓이지만 현실적으로도 전북교육청이 법리적 차원에서 예산배정을 하지 않은 것은 문제를 가중시켰다. 누리과정 예산 거부가 박근혜 정권에 대한 공분(公憤)을 가져오기보다 영세한 어린이집 폐원, 보육교사 감축, 질 낮은 식비라는 체감적 고통을 가져왔고 누구보다도 먼저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삶을 위태롭게 했다.
전북교육청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다. 어린 아이들, 누리교사 및 어린이집 운영자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 전북교육청의 법적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소수의 이견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누리예산은 정부가 편성하는 것이 맞다. 지킬 의사가 없던 박근혜의 대선공약과는 무관하게 설령 보육이라고 해도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전북교육청과 전북 어린이집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자의 주장을 담은 기자회견, 시위, 교육청 농성, 파업경고가 지속되었고 심지어 우발적이지만 교육감에 대한 린치사건까지 일어났다. 근원적으로 사고를 친 박근혜 정권은 거의 무반응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지역에서는 말싸움, 논리싸움을 넘어서 정당성을 찾기 어려운 폭력행사에 이르고 있다. 가해자는 도주한 상태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피해자끼리 다투는 참담한 형편이다.
부상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한 쪽의 피해자는 끊임없이 가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으며 더 큰 부상을 당한 피해자는 정황을 무시하고 다른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적법적이든 불법적이든 관계없이 그저 내가 심각한 피해를 보았고 그 책임이 당신에게도 일부 있는 것처럼 보이니 무조건 손해를 보상하거나 배상하라는 것이다. 정치적 피해는 보고 있지만 일상적 피해를 본다고 보기 어려운 한쪽의 피해자는 내 책임이 아니니 가해자에게 가서 배상이든 보상이든 요구하라고 협의조차 하지 않는다.
파울 괴벨스는 히틀러의 최측근이었고 나치스 정권하에서 선전장관을 지냈다. 역사적으로 그의 명성은 탁월했는데 선동, 선전 조작의 달인이었다. 현실을 조작하고 정적을 분할통치하고, 매체를 통해 대중의 시각을 무디게 함으로써 정권의 안정성과 정당성에 기여했다.
정치적으로 정당성을 갖지 못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정치집단은 흔히 괴벨스적인 선전술을 통치의 원리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인간이 이기적이고 유약한 존재라고 보는 까닭이다. 전두환 정권이 등장했을 때의 소위 3허의 일인이었던 허문도에게 부여된 과제는 언론의 지배와 조작을 통해 대중의 지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괴벨스에 준할 정도로 전두환 파시즘에 기여했다.
지금 전북의 누리과정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가해자인 박근혜정권이 권력적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분할통치이자 저 강도전략을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전북지역에서는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어린이집이 가해자인 정권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을 요구하기보다 정치적 피해자인 전북교육청에 원망과 분노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정권에게 김승환 교육감은 옳든 옳지 않든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니 청와대에 누워 고소함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의 아량으로 거의 141억 원에 달하는 누리과정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누리과정 당사자인 어린이집의 처신은 잘못되었다. 김승환 교육감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김승환 교육감이 소통능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의 원칙은 가치 있는 측면도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누리과정 지원문제를 푸는 방식에 절대적으로 공감할 수 없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전북교육청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접점을 찾아보려고 했어야 하는데 제 3자인 전라북도에 의존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오직 돈만 받으면 된다는 방식을 버리고 지원받는 돈이 가치 있는 돈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 돈은 오직 박근혜나 김승환의 돈도 아니지만 당신들의 돈도 아니다. 그 돈은 국민들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낸 돈으로 그 돈을 당신들이 받아야 할 당연한 이유는 없다. 박근혜나 김승환 역시도 국가재정을 소신이나 가치관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유적 발상에 불과하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제대로 요건을 갖추었을 때만이 정당성이 있다.
전라북도가 대신 지급하고 사후에 정산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번 도에서 집행한 운영비 47억 원에 대해서도 추후 어떻게 보전할지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 상황에서 전라북도가 141억 원을 또 지출한다. 전라북도 예산도 국가의 예산이다. 이런 국가의 예산에 대해 당사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긴급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모든 국가기관의 지출은 책임주체가 분명한데 전라북도는 책임주체가 아니다. 책임주체가 아닌 제 3자의 처지인데 지속적으로 개입한다. 민사상이든 형사상이든 사건의 당사자끼리는 충분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제 3자가 지속적으로 뒷돈을 대고 있다. 추후에 협의가 잘 되어서 전북교육청이나 중앙정부가 미리 집행한 지원금을 보전해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에 부적절한 지출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답도 없다. 한 푼, 두 푼도 아닌 141억 원이나 된다.

(▲사진=전북지역 어린이집 누리교사들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승환 교육감이나 어린이집의 전향적 자세가 있었으면 한다. 결국 이 문제는 민주정부를 다시 복원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와 같은 무능하고 강압적인 정권을 다시 세우지 않는 것, 그들의 분할통치와 저 강도 전략에 맞서 정치적이든, 일상적이든 피해를 보고 있는 두 조직이 함께 손을 맞잡고 어께를 거는데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전북교육청과 어린이집은 적이 아니다. 전두환 보다 못한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치욕적으로 기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이다. 각자의 상황이나 침해당하는 자유의 형태와 정도가 다르지만 폭압의 울타리에 갇혀있다. 어루만져주고 눈물을 서로 닦아주어도 모자랄 두 집단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것은 전두환 보다 못한 치졸한 가해자인 박근혜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 주는 것이며 먹어본 적도 없는 송로버섯보다 더 귀한 것을 상납하는 행위이다.
1987년 6월의 기억은 새롭다. 해방 이후에 국민의 항쟁으로 민주주의를 만들려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죽음이 있었지만 승리의 기억은 많지 않다. 몇 안 되는 승리 중에서 뚜렷하고 분명한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 6월 민주항쟁이다. 6월 민주항쟁의 승리 원인에 대해서 여러 이견이 있지만 공감하는 것은 대중적 기치와 단결이었다. 직선제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선도적인 그룹의 다수가 수용하고 국민으로부터, 국민에게로 가는 운동으로 우리는 이겼다. 난해하고 원칙적인 주장이 승리를 거두게 한 것이 아니라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로 민주정부!”라는 짧은 8자의 구호는 군부파시즘에 대한 민중의 확실하고 분명한 승리였다.
김승환 교육감에게 공감과 연민의 가슴 따뜻함을 기대해본다. 공감은 내 입장을 보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보는 것이다. 상대는 교육감의 적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폭압으로 부터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다. 더 좋은 교육,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바람이 교육감의 심장에 터질듯이 가득할지라도 선도적인 원칙으로만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지난 역사를 보면 취임 초에 열광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책이 처음으로 암초를 만난 것은 ‘종합부동산세 도입이었다. 종부세가 ’부동산공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불로소득에 대한 공익적 제도라는 점에서 이의가 없지만 가장 큰 반발은 의도치 않게 잠재적 수혜자인 중산층으로부터 나왔다. 그들의 부는 언제나 하류층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개혁은 그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취지를 여려 번 기자회견을 통해 말했지만 박근혜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기회를 만난 듯이 종부세의 본질을 흐리며 정권을 압박했다. 그 뒤에서 조용하게 지켜보는 것은 해방 이후 지금껏 이 땅을 지배하는 기득권층이었다. 그들은 가만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노무현 정권에게는 정의로운 의도와 무관하게 가장 크게 당한 첫 번째의 정치적 타격이었다.
어찌 되었든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중산층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리적 배신감만 남았다. 누리과정 문제는 법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치적 문제만은 아니다. 분명한 문제가 더 있는데 지금 이 땅의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며 복지의 기본적 틀을 훼손할 수 있는 점이다. 김승환 교육감도 누구보다도 민주정부 수립을 기대한다면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공감과 연민, 관용이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라고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칠 것만이 아니라 현실적 사례를 보여주는 계기를 선도적으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소통의 가치는 나를 버리는 것이지 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은 타자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지 나의 가치가 100% 옳다고 그대로 가자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적이 누구인가에 대해 공감한다면 누리과정 지원에 대해 유연하게 해야 한다.
어린이집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냉정하게 보면 어린이집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기본권, 교육적 가치는 부가적인 권리이며 본질은 이익추구집단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공익적으로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지 어린이집의 사익을 채워주자는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부자 집 아이들에게 밥을 공짜로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점에서 어린이집 측이 타 시도와의 형평성이나 유치원과의 형평성을 논하면서 전라북도 교육청만을 전적으로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라북도 교육청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다. 다른 차가 밀고 들어와서 중간에 있던 차가 어린이 집 차와 추돌했다고 중간에 있던 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백남기씨의 사인이 외인사인데 치료과정에서 내상이 깊어져서 죽었다고 사인을 병사로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명백한 원인은 외인사이다. 치료과정에서 소홀히 한 점이 있을 수 있어도 그 점이 사인을 바꾸지는 못한다.
더 가혹하게 말하면 국가가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적이익을 국가가 어느 정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공익적 가치의 정도에 따르고 구성원들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사적이익을 보장해주려는 것과 무관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라북도교육청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선후관계가 바뀐 것이다.
정말 전라북도 교육청을 비난하고 싶으면 어린이집은 청와대 앞에 가서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배정하라고 1인 시위라도 해야 한다. 전두환 시절처럼 1인 시위 한다고 경찰서에 개처럼 끌려가지 않는다. 정당하게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전북에서 어린이집이 1500개가 넘으니 한 분씩이 매일 시위를 해도 근 4년은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각자의 사유권을 보장하지만 사유권에 해당하는 노동과 도덕적 책무를 다하라고 하고 있다. 이는 시장에서만이 아니다.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라북도 교육청에 누리과정 예산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말고 어린이집은 공동의 피해자끼리 연대할 방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예산에 대한 집행권한을 사회적 상식과 어긋나게 소신이나 가치관으로 독점할 수 없듯이 무조건 당신들이 그 예산을 받아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복지예산을 주는 것은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인간들을 위한 것이지 쌈짓돈을 챙겨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접점을 찾도록 해야 한다. 가해자인 박근혜 정권에 대해 공동으로 투쟁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교육감에게 현실적 어려움을 제시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에게도 할 말이 있다. 누리과정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형사고소, 고발에 이를 정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책임이라고 여겨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실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집들이 정치적으로 폐원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두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이 사안은 지역의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선거 때만 되면 누구를 지지하거나 그 흔한 일을 벌이면서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나? 거대한 담론에 대해서는 환경운동이든 인권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발 벗고 나서면서 피해자들끼리 벌이는 이전투구식의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역운동 차원에서 가칭 ‘전북누리과정문제 해결을 위한 위원회’라도 만들어서 중재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식적인 처사가 되는 것이며 일상적인 삶에서 시민운동의 본질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잘 못보고 있는 것일지 모르지만지난 2년 동안 누리과정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가 치우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해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중재하려는 흔적을 본 적이 없다.
전라북도가 나서서 지난번 돈까지 거의 190억을 지원한 것은 최악이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송하진 지사가 표를 얻고 소수이든 다수이든 이기적인 인간들의 뱃속을 채우는 것이지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더구나 지방재정을 그 사용목적에 위반해 쓰는 ‘도덕적 해이’이다.
박근혜 정권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누리과정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정권은 조작과 강압을 물먹듯이 하는 정권이다. 그런 정권이 누리과정 문제에 대해 중앙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겠다고 손들고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면 바보 아니면 근접하기 어려운 천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전라북도 교육청의 공감의 자세와 어린이집 관계자의 민주주의적 시민의식, 시민사회단체의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 중재노력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전북교육청이 상대를 탓하기에는 박근혜 정권의 폭압이 견딜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어린이집도 인간의 존엄성이나 평등권을 말하려면 그 책임을 다하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민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정치질서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는 이기적 개인을 인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주체적 인간을 바탕으로 할 때만이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