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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근혜 게이트 몸통은 삼성


... ( 편집부 ) (2016-12-05 07:13:29)

[전북교육칼럼-‘시선’]
강문식 ❙ 민주노총 전북본부 교육선전부장

박근혜 게이트는 향간에 회자되던 재벌과 권력 사이의 비리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모든 재벌이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이 중 가장 나쁜 기업은 단연코 삼성이다. 삼성은 대한민국 1년 예산에 맞먹는 자산 총계(2015년 기준 350조 원), 1년 GDP의 1/5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곳곳을 지배·개입해왔다.

삼성이 영향을 미친 곳은 경제뿐만이 아니다. 삼성은 심지어 드림클래스, 삼성장학생(이 단어는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비리 검사를 지칭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등 삼성을 위한 매우 사적이고 특수한 교육 과정을 공교육과 병렬시키는 것까지 성공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초중등교육의 영향이 장기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못한 일을 삼성은 진작 해치웠다. 삼성이 대한민국 곳곳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삼성 드림클래스(출처 : 삼성 드림클래스)

삼성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204억 원을 출연한 것처럼 정권에 불법 자금을 제공한 사실은 이번 정권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드러난 자료에 따르면, 삼성은 전두환 정권에 220억 원, 노태우 정권에 250억 원,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쪽에 150억 원을 전달했다. 삼성은 그 대가로 초월적인 법 지위를 누리며 경영을 해올 수 있었다. 삼성은 비자금 조성, 뇌물, 불법 증여, 노조파괴 전략 문건 등 갖은 범법행위가 드러나도 제대로 처벌받은 적은 없다. 이런 삼성의 경영 행태를 단지 ‘불법’이라고만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동안 삼성이 뛰어 넘어 온 것은 현행법이 아니라 헌법 그 자체였다.

삼성은 삼성 일가의 이익에 대한민국을 복속시킬 수 있도록 치밀하게 기획하고 실행해왔다. 삼성이 현행법 아래에서 특히 실현하기 어려웠던 것은 삼성 일가만의 특수한 이익, 상속세 없는 경영 세습이었다.

에버랜드-제일모직-삼성물산

삼성 일가의 초헌법적 경영세습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은 이재용으로의 세습을 위해 에버랜드를 활용한다. 장외주식 가격의 1/10도 안 되는 가격인 주당 7,700원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했고, 그 전환사채를 이재용에게 넘겨준다. 총 48억원이 들었다. 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자 이재용은 에버랜드 지분을 25.1% 소유한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후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을 1주당 9,000원이라는 헐값에 매입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했다. 에버랜드가 매입한 삼성생명 주식이 누구 명의였던 것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에버랜드를 이용해 삼성전자를 지배해왔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삼성 일가는 이재용이 보다 직접적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기를 원했다.

2013년 에버랜드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인수하고 이름도 제일모직으로 바꿨다. 그리고,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4.1% 보유하고 있어, 여기에 이건희 회장·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을 합치면 이재용이 안정적으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이재용은 삼성물산의 주식을 하나도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병비율이 제일모직에 유리할수록 통합 삼성물산에서 지분을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개입했다.

국민들 쌈짓돈까지 훔쳐갔다

국민연금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전 제일모직 주식은 매수했고, 삼성물산 주식은 매도했다. 제일모직 주가는 올랐고 삼성물산 주가는 떨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 1:삼성물산 0.35로 결정되었다. 당연히 삼성물산에 불리한 조건이었다. 당시 삼성물산에서 삼성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14%로 합병 가결을 위해 필요한 2/3지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다시 구원자로 등장한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을 11.2% 보유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은 손실이 명확한 상황임에도 합병 찬성을 의결했다.

이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는 16% 지분을 보유한 이재용이 되었다. 국민연금은 지분이 6.7%로 줄어들면서 5,900억 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입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내부 기구인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문형표는 의결위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합병 찬성을 요구했고, 기금운용본부장이던 홍완선은 찬성의결을 며칠 앞두고 이재용을 따로 만났음을 국정조사에서 실토하기도 했다. 홍완선이 정권 실세의 청탁에 의한 낙하산 인사였음은 당시에도 공공연하게 거론되던 사실이다. 이재용-박근혜-최순실-문형표-홍완선으로 연결되는 거대하고 더러운 연결고리이다.

이재용은 한참 최순실 관련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10월 27일 열린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었다. 삼성 입장에서는 몇 년간 시름해 온 3대 세습을 청와대 덕분에 주목받지 않고 처리했으니 이야말로 자금 상납에 대한 청와대의 살신성인 보은일 터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뿌리 채 흔든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불법적 세습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이를 심각하게 주시하지 않아 온 게 사실이다.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정서와 재벌이 사적 재산을 증여하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가 하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고 경제는 철저히 사유재산에 기반해 자유경쟁의 원칙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믿음이다. 단순하게 바꾸면 내가 누구에게 얼마를 기부하든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냐는 인식틀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삼성이 국민연금을 건드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삼성 경영권 승계 사건에서 드러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증여하기 위해서는 공적 재산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공적 재산을 쉽게 전용하려면 공공의 통제를 약화시켜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결정했던 투자위원회 회의록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500조에 달하는 연금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 사례가 수두룩하게 있을 거라는 게 합리적인 추측이다. 정부는 연금기금을 더 쉽게 사용하기 위해서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추진하고, 기금운용 결과에 대해 성과평가를 들이밀고 있다. 정부와 재벌이 원하는 성과는 국민연금기금이 재벌 일가의 이해에 얼마나 부합했는지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렇듯 정부가 추진하는 민영화는 공적 재산을 공공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수단이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삼성의 재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까지도 질문해볼 수 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정치자금을 헌납하며 노동조합 없는 경영을 보장받았고, 삼성이 투자해서 생산한 제품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삼성이 작성한 경제보고서가 아예 국가의 경제정책으로 채택되는 지경이었고, 일례로 삼성이 의료계열에 투자하니 그 수익을 보장해주는 의료민영화 정책으로 화답해주기까지 했다. 국민연금 사건은 그들이 쌓아 놓은 수백 조 원 자산이 결국 우리 모두의 것을 야금야금 빼앗아 쌓아져 온 것이라는 걸 드러내주는 사건 중 하나이다.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삼성을 질타하는 것만으로 끝낼 수 없는 문제다. 국민 전체에 피해를 입히면 그 피해를 끝까지 징벌한다는 사례를 남겨야 한다. 이런 오욕의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는다면 삼성의 농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삼성이 국민연금기금에 입힌 피해 5,900억 원을 완전히 복구시켜야 한다. 삼성물산-제일목직 합병을 반대했던 엘리엇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수조 원대 국제제소(ISD)를 예고하고 있어 전체 피해규모는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발생한 피해액과 앞으로 발생할 피해액 전체를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일가에게 환수시켜야 한다. 우선 국민연금공단이 이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요구하는 청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행법만으로는 이런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우기 쉽지 않다. 필요하다면 이것이 가능해지도록 국회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일명 이재용특별법이다. 삼성의 3대 세습 과정에서 자행된 비리와 불법도 철저히 수사하고 관련자들 모두를 처벌해야 한다.

재발을 막기 위해 연금기금에 대한 공적통제도 강화해야 한다.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는 재론되어서는 안 되며, 연기금 투자와 관련된 각종 결정 내용은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단 운영에 노동조합의 감시와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연기금의 공적 통제는 금융 주도 자본주의 아래에서 제기되는 금융에 대한 공적 통제 문제로도 연결되는 고리이다.

한국의 모든 국가권력이 삼성의 이해에 따라 움직여왔다. 삼성은 정치, 사법, 언론 등 어느 권력집단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요구 안에 다양한 내용들이 채워져야겠지만, 여기에서 삼성의 문제는 제 일 순위로 다뤄져야 한다. 삼성을 바로잡아야 정치권력을 바로잡을 수 있다. 삼성이 바뀌면 우리의 삶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