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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청와대는 규제프리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 ( 편집부 ) (2017-01-09 09: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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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칼럼-‘시선’]
강문식 ❙ 민주노총 전북본부 교육선전부장

박근혜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규제 철폐’를 외치며 사회 전 영역에서 규제를 걷어내겠다 공언해왔다. 박근혜 정권이 공을 들여 추진하던 규제프리존법 역시 지역에 전략산업을 선정하여 각종 규제를 대폭 삭제하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규제프리존법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 입법안이자 새누리당 20대 국회 1호 제출법안이다.

규제프리존법은 19대 국회에도 제출되었지만 반대에 부딪혀 회기를 넘겨 처리되지 못한 법안이다. 20대 국회에서도, 규제프리존법의 추진 과정에 박근혜-최순실-재벌의 공모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규제프리존법 논의는 사실상 중단되었었다.

하지만 재벌-청와대-기타 공모자들은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1월 3일,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규제프리존법 처리를 요구했고, 1월 4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재계 신년인사회에서 규제프리존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1월 5일에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은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당론으로 정하자고 촉구하며 나섰다. 새해가 밝자마자 청와대-새누리-국민의당이 한 목소리로 규제프리존법을 외치고 있는데 이들의 배후에 재벌이 있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법에 규제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한다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예를 들어, 안드로메다에서 날아 온 운석에서 지구에는 없던 신물질을 발견했다고 치자. 시험을 해보니 이 신물질은 기존의 살균제보다 훨씬 살균력이 좋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옥스라는 기업에서 이 신물질을 사용하여 가습기살균제를 만들려고 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이 신물질에 대한 사용기준이 없더라도 신물질의 위험성을 평가한 이후에야 제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프리존법이 통과된 이후라면, 신물질에 대한 사용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곧바로 제품을 제조하는데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위험성 평가를 거치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도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형식적인 검증 제도 덕분에 인체에 위해한 물질을 함유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유통됐고 그 결과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현실에서 규제를 아예 네가티브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보장받을 길이 없어진다.

네거티브 규제방식을 법체계에 전면적으로 도입한 국가는 없다. 이는 사후에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개발 당시에는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시판 후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어 사회적 문제가 됐던 사례는 숱하게 있어왔다. 지금은 대표적인 독극물로 여겨지는 DDT는 출시 당시 무해한 살충제로 홍보되었었다. 독성이 없는 진통제라며 출시된 탈리도마이드는 태아에 심각한 기형을 유발해 그 생존자들이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다. 인류는 이렇듯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기업의 이윤 앞에 규제를 무한정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왔다.

하지만 한국 재벌과 그들의 대변인인 청와대, 새누리당은 거꾸로 가겠단다. 규제프리존법은 실증특례를 명시해, 기업이 안정성 실증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했고, 신기술 기반사업도 기업이 별다른 검증절차 없이 곧바로 승인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프리존에서 국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입안자들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법 제18조에 <신기술 기반사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손해>를 배상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이다.

규제프리존법은 제20조부터 제90조까지 71개 조항에 걸쳐 각종 법률의 규제를 무력화시키는 특례를 열거하고 있다. 특히 의료기관이 영리 목적의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조항도 끼워져 있어 법이 통과되면 사실상 의료민영화가 시행된다. 새누리당은 의료민영화만큼은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며 규제완화 관련법에 지속적으로 내용을 집어넣고 있다.



전북지역의 전략산업인 농생명산업에 적용되는 특례 조항도 다수 있다. 제45조는 유전자변형생물체(GMO) 관련 규제를 완화하여 개발․실험을 30일 내 승인하도록 하고 있다. 제57조는 공공기관이 설립한 종자연구단지를 기업에게 수의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GM작물의 위험성은 수십 년에 걸쳐 검증해야 하는 것으로 불과 30일 안에 졸속 개발 승인하도록 한 것은 위험천만한 작태이다. 게다가 공공기관이 설립한 연구단지를 민간기업에 헐값 매각하는 것은 대놓고 세금을 기업에게 퍼주겠다는 의도이다.

각종 규제완화의 마지막은 언제나 노동이었다. 2016년 11월 1일 열린 규제프리존 공정회에 참가한 새누리당 측 연구위원은 ‘노동 규제를 풀어서 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에게 규제 특혜를 주는 환경에서는 관계기관의 단속․처벌도 완화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보호하는 각종 조치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규제프리존법이 재벌의 청탁으로 추진되었다는 정황은 그동안 속속 드러났다. 재벌들이 미르 재단에 출연을 확정한 바로 다음 날인 2015년 10월 27일, 박근혜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예산안과 별 관련이 없는 규제프리존법 처리를 특별 주문했다. 재벌들의 K스포츠재단 출연이 마무리된 다음날인 2016년 1월 13일에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국회에 경제 관련 법 및 노동개악법 통과를 요구했다. 규제프리존으로 개발제한 완화가 예상되는 지역에 최순실 일가가 막대한 땅을 매입해놓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재벌들이 박근혜-최순실에게 부당한 지원을 하고 그 대가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특검 조사 과정에서도 더 깊숙이 드러나고 있다.


▲2016년 8월 10일 열린 규제프리존 특별법 시·도지사 간담회

그런데 규제프리존법은 단지 청와대-재벌만의 공모가 아니다. 각 지역별로 전략산업을 나눠놓은 덕에 지자체도 규제프리존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규제프리존특별법 통과를 국민의당 당론 채택으로 요구한 장병완 의원은 규제프리존이 각 지역별 전략산업에 한정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제완화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규제프리존을 추진한 세력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별로 사안으로 다뤄지게 하고, 각 지자체가 이해득실을 따지게 만들면서 규제완화에 대한 저항을 희석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장 전북에서도 송하진 전북지사가 규제프리존법 조속 통과를 요청하며 정부의 규제완화에 행보를 같이해오고 있었다. 송하진 지사는 2016년 8월 10일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건의문에 서명했다. 규제프리존법에 포함된 전북지역 대상 규제완화책도 전라북도의 요청이었다.

소위 자유경쟁이라는 미명아래 규제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없애려는 시도는 지난 십 수 년 간 지속되어 왔다. 청와대-재벌들부터 지역 사회 곳곳까지 위아래를 막론하고 기업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줘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감시받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 기업의 활동은 각종 대형 사고와 인명 피해로 이어졌던 것이 현실이다. 수백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 역시 수상쩍은 항해를 사전에 철저히 막을 수 있는 규제가 갖춰져 있었고 그 규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지 모른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이 재벌의 청탁 결과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법이 가져올 미래가 대다수 노동자, 시민들에게는 파괴적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규제프리존법을 각각의 지역에 국한된 문제로 쪼개어 보지 말고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상위 0.1% 소수 기득권 집단과 나머지 전체 노동자, 시민 사이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지역 발전이라는 논리로 전북 도민, 더 나아가 전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게 방조해서는 안 된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폐기 되어야 한다. 전라북도는 GM작물 규제프리존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자유경쟁, 규제완화라는 허깨비를 박근혜 정권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걷어내는 것이 2017년 우리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