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2명의 여중생을 장갑차로 치어 살해함으로써 촉발된 한국민들의 반미감정 고조와 이에 대응하는 주한미군의 과잉적이고 점령주둔군과 같은 태도는 스스로가 남한에서의 미군주둔의 위기봉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우연이라고는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을 동반한 서해교전과 남북한 군인들의 아까운 죽음과 부상은 도대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확증을 가지고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우선 북 군부등 강경파의 불만 표출, 절차와 형식을 중요시하는 북한사회가 일부 강경파에 의해 독단적으로 추진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수 있다. 또한 지난 99년 서해교전(연평해전) 참패에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은 지난 6 월 19일까지만 해도 근방 북방한계선 수역에서 북쪽 어선 및 경비정의 동향과 관련해 대규모 선단의 조업을 스스로가 막는 등 꽃게잡이 어선의 남진을 통제하는 분위기가 뚜렷한 것으로 남쪽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최대한 피하는 자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질수가 없다.
북미회담 또는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 논의 과정에서 발생한문제이며 특히 주한미군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이번 서해 교전의 문제점에 분명 북한과 미국간의 상호 이해관계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볼수 없는 노릇이다.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의 진척은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할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흔들리고 있음을 나타내며 북한의 주적 상실과 쇠퇴는 곧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명분이 상실됨을 의미 하기도 한다.
결국 진실은 어떻든간에 북한의 도움으로 주한미군은 남한 국민들로부터의 강한 적개심과 반미감정을 미봉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건 사실이다.
그리고 북측의 주장처럼 NLL문제가 발단이었다라면 사전에도 더욱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할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