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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교수 전주 강연 지상중계①


... 문수현 (2017-02-21 15:17:46)

재일조선인 2세인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67)가 20일 오후 전주에서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 차별과 배제의 땅 후쿠시마’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서 교수는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뒤따른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일본사회 소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분석한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민주노총전북본부, 탈핵에너지전환전북연대 4개 단체 공동주최로 마련된 이날 강연에는 100여명의 청중이 서 교수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강연 내용 대부분을 활자로 옮겨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후쿠시마 대지진과 관동 대지진

일본 후쿠시마에서 2011년에 쓰나미와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5년이 됐어요. 5년 전에 이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저는, 과연 후쿠시마에 있는 우리 같은 소수자가 어떤 처우를 받게 될까 고민[걱정]을 했었어요. 아시다시피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죠.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의식은 전혀 좋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후쿠시마에서 그런 대사고가 일어났고요.

후쿠시마에는 조선인학교가 있어요. 이걸 조총련계 아니냐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 오래된 나라가 해방되자마자, 조선인들이 자기 손으로 학교를 만들었어요. 그때까지 못했던 민족교육을 자기 손으로 하자는 거였죠. 일본교육청 즉 문부성은 계속 이걸 탄압해왔어요. 고등학생들이 무료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권리인데 일본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미국 등 다른 국제학교는 다 무상화 대상이 됐는데 조선학교만 빼고 있어요. 조선학교만 무상화 대상에서 배척당하는 이유가 북조선하고의 국가 간 관계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국가 간 관계가 좋거나 안 좋거나 고등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는 보편적인 권리예요. 문제는 그런 짓을 일본이 하는데 대다수 일본국민들이 그걸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80% 이상의 일본인들이 그것이 좋다고 지지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후쿠시마에도 고오리야마 시에 조선인학교가 있는데 과연 어떻게 됐을지 [걱정이 됐고], 그것이 제가 [‘나에게 있어서의 3.11-후쿠시마를 걸어서’라는 제목의] 다큐를 만든 동기 중 하나입니다.

이런 대지진 때는, 특히나 원전사고 같은 게 생겼을 때 가장 두려워할 것은 이런 것을 계기로 해서 하나의 국가가 파시즘화하는 것이에요. 그런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관동대지진 때도 그걸 계기로 해서 일본국가가 소위 ‘대정데모크라시’ 시대를 부정하고 도쿄를 부흥한다는 구호 아래 국가주의가 세워지고 치안유지법이 만들어지고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태평양 전쟁에 돌입했어요. 그런 것도 우려가 됐죠. 그런데 아쉽게도 (제가 한겨레신문에도 지진 쓰나미 사건 현장에서 느낀 것을 그대로 칼럼에 쓰기도 했는데) 이걸 계기로 해서 일본사람들이 자기성찰을 잘 하고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일본이 급히 우경화되고 국민국가 중심주의로 가는 계기가 됐어요. 아베 신조가 나오고, 일본 부흥을 위해 도쿄올림픽을 성공시키자는 구호를 외치고, 국민 대다수가 그걸 찬성하고 따라가고 있어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금은 완전히 관리 하에 있다(perfectly under control)는 완전한 거짓말을 해왔어요. 문제는 거짓말인지 알면서도 일본 국민 대다수가 그걸 환영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컨트롤 못해요. 최근까지도 원전에서 녹아떨어진 염료의 방사능이 너무 세서 아무도 접근할 수 없어요. 그래서 로봇을 만들어서 조사하려고 보냈는데 불가 2미터 들어가다가 고장이 났죠. 5년 지나고 나서인데 아직까지 염료가 어떤 형태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제어할 방법도 없이 후쿠시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찮다. 일본은 이겨낼 수 있다. 옛날 전쟁 이후도 극복했다. 우리는 가능한 나라다.” 이런 아주 못된 구호에 국민 대다수가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소수자인 재일조선인이나 여성, 장애인 등에게 너무 어려운 상황인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평화에 대한 위협입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그렇고, 원전사고라는 사건이 그걸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사고예요. 그런데도 일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이고 고립돼 있어요. 이런 사고는 환경 차원에서 물론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만 하는데,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라는 큰 구도 속에서 생각해야만 하는 사례라고 봅니다.


▲디아스포라 사상가 서경식 교수가 20일 오후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차별과 배제의 땅 후쿠시마'를 주제로 강연했다.

가마쿠라 히데야 씨는 일본 NHK에서 일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인데, 저하고 지난 20년 동안 일을 같이 해왔어요. 이때도 사고 3개월 뒤에 후쿠시마 현장에 들어가서 영상을 찍었어요. 원래 1시간짜리인데 압축판으로 지금 보여드리겠습니다. - 지금 보신 것은 일본 NHK교육방송에서 아침 5시에 하는 1시간짜리 프로에요. [너무 이른 시간이라] 거의 시청자가 없죠. 그래서 가마쿠라가 그래도 나름대로 이런 프로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일본은 방송에 대한 국가 개입도 심하고, 그보다 일본 방송인·언론인들이 ‘자숙’이라고 해서 자체 자기검열도 심해 이런 프로가 나오기 어려운데도 이렇게 구성해서 보태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일본인의 뿌리 깊은 국민주의

[영상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조선인학교가 지금은 폐교가 됐어요. 사고가 일어난 3개월 뒤 모습이었는데, 다른 곳으로 학생들을 보내고 교육했는데 재정 등 이유로 어려웠다단 점, 소학생이어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장기간 유지하기는 정신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이 두 가지 큰 이유였어요. 이게 후쿠시마현 고오리야마시에 있는 조그마한 조선인학교 하나가 폐교가 됐다 하는 걸 넘어서는 의미가 있어요. 왜냐? 제가 간 후쿠시마의 그 지역은 탄광지역이어서 일제강점기에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끌려왔었어요. 지금은 거기가 탄광으로는 더 이상 아니고 관광시설이 돼 온천이 됐는데, 과거 유명한 탄광이에요. 연구자들 연구로는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오고 조선식 이름은 부르기 어려우니까 그냥 번호로 1번 2번 3번 이렇게 이름 붙였다는 기록도 나와요. 이에 대해서는 박경식 교수 같은 후배 사학자의 연구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 곧 후쿠시마는 재일 식민지 조선인의 역사에게 중요한 터라는 거죠. 거기에 고오리야마라는 도시에 해방 직후부터 그런 조그만 학교를 스스로 만들고 유지해왔는데 이제 폐교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 학교의 이사장은 그렇게 후쿠시마에 건너온 조선인의 2세인데 어머니는 일본인입니다. 탄광에 온 조선인 노동자하고 가난하고 고생하는 일본여성이 서로 돕고 살아온 경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의 자녀가 되는 사람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러니까 후쿠시마 같은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특히나 여성들은 일 잘하는 조선인 노동자하고 같이 살면 그래도 먹고살 수 있었던 경우도 많았던 것이죠. 이사장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인 것입니다. 원래 그 조선인학교의 운전기사이다가 그 학교를 지키고 있다가 이사장이 됐고 마지막에는 방사능 피해를 제염도 하는 역사를 겪어온 분입니다.

그리고 [영상에서] 미가타 지역에서 운전해온 교장선생님도 교장답지 않은, 제가 아주 가깝게 느끼는 모습인데, 교토 우토로 출신이에요. 우토로에는 일제 때 비행기공장이 세워지고 노동자로 조선인을 많이 데려갔어요. 전쟁 이후 거기 남은 조선인들이 그대로 어렵게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5~10년 전부터 일본인들의 공격대상이 됐어요. “조선인들이 땅을 불법 점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식민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거기서 먹고살기 위해서 살고 있는 거니까 터무니없는 얘기인데도 그런 식으로 공격을 많이 받아온 지역이고, 그래서 상징적인 지역이라는 것이지요.

환경차원 넘어 평화·인간해방과 결부된 문제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대지진이나 이런 사고가 났을 때 “우리 일본 국민들의 고난이다. 우리가 피해자다. 우린 그걸 이겨낼 수 있다. 패전했을 때도 곧 부흥했다.” 그런 애기를 막 해요. 아주 내향적인, 자기중심적인 얘깁니다. 식민지지대에 대한 반성, 사죄, 보상 아무것도 없이. 그런데 전쟁 직후 일본 경제의 부흥도 조선전쟁, 베트남전쟁 군수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런 의식이 거의 없는 것이 일본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다큐 영상에 나오는] 제가 만난 농부, 아주 호인이죠. 그런 사람을 저도 좋아하고, 개개인을 보면 너무 좋은 사람들인데, 내면에 국민주의, 국민적인 자기중심주의가 너무 깊이 침투돼있어요. 그래서 자기 옆에 재일조선인 소수자가 그런 식으로 차별받고 고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 갖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소수자예요. 지진이 일어난 직후에 피해를 받은 지역에 외국인 강도들이 들어가 안 좋은 짓을 다 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돌았어요. SNS로. 관동대지진 때하고 비슷합니다. 그때도 조선인이 어디서 방화를 했다는 둥. 당시 6천명 조선인이 학살당했어요. 똑같은 식으로[근거 없는 소문에 의해서]. 그런데 무서운 것은 소수 안 좋은 놈들이 호기심으로 혹은 민족적 증오심으로 그런 짓을 하는데, 최근에 일본의 어떤 대학교수가 조사했더니 5년 전 그때 그 순간에 86%의 일본인이 그 소문을 믿었다는 것이에요. 과거 식민지 시대의 차별심과 멸시감이 남아있어서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미국 대선 때 그걸 우리가 다시 보게 된 것 아닙니까!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본국인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을 공공연히 얘기하는 사람이 극단적 소수일 거다, 그런 구호를 외치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 안 했나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인간 마음속의 차별의식과 멸시감을 일으키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타산한 거죠. 말하자면 이 권력자들이 우리보다 인간성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단 얘기죠. 그래서 전쟁 끝나고 나라가 해방된 지 70년 가까이 되었는데 저는 조금도 안심할 수 없어요. 저는 일본에서 태어난 지 66년 됐는데 안심한 순간이 한 순간도 없어요. 우리나라가 아직 분단 상황이고, 언제 두 번째 조선전쟁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여러분은 살고 계시니까 일본에 있는 우리하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는 근대·현대사에 있어서 결국은 문제, 고뇌, 고난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런 원전사고에 대해서도 물론 중요한 측면으로 자연환경, 음식물의 안전성 이런 문제가 있는데, 그런 것을 우리의 평화, 인간적 해방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생각해야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거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일본인 중에도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故 마루키 이리, 도시 화가선생님 부부의 작품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마루키 이리는 일본화 화가이고, 부인 이리는 양화가입니다. 이 부부가 전쟁 때는, 전쟁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 일본인이어서 일본의 전쟁에 대해 그리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없었어요. 특히 도시 이 부인은 그때부터 이름이 난 양화가였기 때문에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리셨어요. 그 그림들도 ‘남태평양 섬을 점령한 우리 일본군의 용감함’이라든가 하는 군국주의적인 주제로 그림을 그렸어요. 부인은 나중에, 전후에 많이 반성하고 평생 후회를 품고 사셨어요. 그런데 이 부부가 히로시마 출신이에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