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71년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고 한국의 공교육이 확립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와 함께 중학교는 1980년대 중반, 고등학교는 1990년대 중반에 완전취학에 이릅니다.
그래서 한국의 초중등교육은 공교육이라는 기치아래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지만 입시라는 경쟁구조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의 국민 내부의 계층적 분화를 정당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로서 교육은 계층상승을 위한 과잉교육이 이뤄지고 사교육이 증폭되어 오히려 공교육이 국민들 스스로에게 거부당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듭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협력교육을 통한 교실수업의 개선 등으로 일컬어지는 혁신학교 운영 등의 진보교육의 경향으로 대안을 모색하지만 그나마 부유하거나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들의 농촌유학 또는 농촌학교 살리기 차원이상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잘나가고 있다는 혁신학교의 재학생 57명 중 43명(75.4%), 이외의 2개 학교를 포함하여 215명 중 145명(67.4%)이 위장 전입학생 입니다. 오래전 부터 남다른 교육으로 운영해온 완주 S모초교의 경우 혁신학교의 롤모델로 여겨집니다. 이 학교는 위장전입을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고 (학교는 그렇게 말하지만 확인해본결과 위장전입자는 있습니다.) 아이 교육을 위해 농촌으로 이주하고 부모의 직장은 도시에서 교수,의사, 공무원, NGO활동가 등 지식노동자의 자녀들로 주축이 되는 상황입니다.
한국 공교육에 불신을 가진 학부모들의 자녀유학..비둘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는데 국내에서 그러한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정도로 혁신학교가 위치지어지고 전락하게 됩니다.
이외에 과거로 부터 진행되어온 연구학교 형태와 다를 바 없는 학교운영을 혁신학교로 포장하고 선전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늬만 혁신학교들을 제외하고 나름대로의 혁신학교 운영에 충실한 학교의 경우도 협력교육을 통한 수업개선으로 경쟁교육을 극복할수 있다는 단순함과 학교의 자율주의적 운영이 상황에 따라서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쟁구도의 토대가 되는 계층분화에 이바지 할수 있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는 학생의 욕구와 자연스러운 선택과 자율이라는 교육이상은 어떤 학생에게는 차별적이며 누구에게는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혁신학교가 무늬만 혁신학교이고 실제로는 연구학교 수준인 경우와 협력교육을 충실히 하고 있는 혁신학교인 경우라도 실패할수 밖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은 공교육의 기회균등한 교육의 확대라는 기본적 가치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교육의 모순과 한계가 교육과정이나 교실수업과 같은 학교내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쟁교육에 맞서는 대안으로서 협력수업이나 혁신학교의 특성화는 본래 취지와 다르게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문제점으로는 학생의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육체노동자의 자녀가 군집한 학교에서는 행동통제, 규칙준수를 강조하는 경향의 강화와 학생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지식인노동자의 자녀들이 군집된 학교와의 분화 입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 학교와 혁신학교의 차이점으로 닮아 있습니다.
이는 자율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에서의 지식인노동자의 자녀 군집과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었지만 결국 상응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쟁교육을 거부하고 협력교육을 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호로서는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 한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과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으로서 보편교육의 확대 그리고 부모의 가정형편이나 환경에 차별받지 않는 공동교육을 실천해나가는 것은 특성화된 혁신학교가 이룰 수 없는 진보교육의 가치이자 희망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마치 혁신학교가 경쟁교육의 대안이 되는 진보교육인 것처럼 포장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