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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은 없고 행정 편의주의만 있을 뿐..


... ( 편집부 ) (2013-09-03 19:24:52)

지난 27일 교육부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시안)’을 발표했다. 명목은 대입전형의 난립을 막고 미래지향적 인재 육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가까운 2015학년도에는 일부 예체능 실기를 제외하고 수시는 학생부․논술 위주로, 정시는 수능 위주로 선발하고 올해 수험생의 혼란을 야기한 영어영역 수준별 선택형을 폐지하는 등 현행 대입제도에서 일부 수정해 운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시에서는 학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취지에 맞게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한다고 한다.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교육 철학은 없고 행정 편의주의만 있을 뿐이다.

이번 방안에 대한 여론의 반응도 전혀 다르지 않다. 학교 실제 교육의 운영이라든지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보도는 어디에서도 한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저 ‘사교육 유발’이니 ‘학습부담 증가’니 ‘문이과 구분 폐지’니 하는 것들에 대한 분석과 시실 보도에만 치우칠 뿐이다. 즉 우리나라 교육에 수능은 있고 학교 현장은 없는 것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그래도 ‘2009 개정교육과정’이라는 과정이라도 거친 이후 수능제도의 개편을 시도했다. 그렇지만 이번 교과부의 발전 방안은 학교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이루어진 ‘땜빵’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 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연차적으로 36시간이었던 주당 수업 시수가 34시간으로 그리고 실제 수업시수도 34시간에서 30시간으로 감소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창의적체험활동’ 즉 동아리․자율․봉사․진로시간으로 운영하였다. 그런데 당장 내년부터 사정관제의 경우 거의 사문화되는 것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주당 4시간의 창체 시간은 유명무실한 시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수능제도와 학교 교육과정운영의 연관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예이다.

그런데 2017학년도부터 시행하겠다고 하는 3가지 방안은 모두 이러한 학교 교육과정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1안처럼 단순하게 한국사 수능 필수 하나만 가지고도 학교 현장에는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현재 대부분 학교에서는 한국사를 1학년 과정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문이과의 구분없이 수능 필수가 되면 아마도 모든 학교에서는 한국사를 2학년 교육과정으로 바꿀 것으로 생각된다. 1학년에서만 운영을 해가지고는 3학년에 치르는 수능시험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2학년 학생들이 학습하는 교육과정의 일부가 1학년 과정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현재 2학년은 문이과의 과정 교과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당장 내년 1학년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부터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처럼 교과목이 이동한다면 교사 소요가 몇 년 동안은 맞지 않아 현장의 혼란은 2~3년 이상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교과목 하나의 학년을 변경하는 것조차도 이처럼 단순한 문제는 절대 아닌 것이다.
수능에서 과학이나 사회 영역 하나를 추가하자는 제 2안의 경우는 더 문제가 심각하다. 학교 교육 이수시간은 30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학습해야할 교과목은 자꾸 늘어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사라진 이과 학생들의 사회과목 교육과정도 불과 1년 만에 다시 편성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사회나 과학 교과목의 교사들을 감축으로 모두 정리하고 그 자리를 국영수 교사들로 충원을 해 버린 상태다. 아마 현장에 제대로 정착하는 데에는 또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문이과 구분을 없애자는 3안은 더 이상 말할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를 오는 10월까지 공청회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럼 학교에서는 결정된 시안을 바탕으로 올해 중학교 3학년에 입학하게 되는 2015학년도 신입생 교육과정을 11월에 편성해야할 것이다. 교육과정이 편성되어야 이후에 교사 정원을 결정하게 된다. 잘 아는 것처럼 12월이면 교사들이 이동을 위한 인사 서류를 제출해야한다. 그런데 교육과정이 이제 편성된다면 새로운 교사의 충원은 물론이고 교사들의 이동마저도 불가능한 초유의 사태가 올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는 엄청난 학교 현장의 혼란을 불러올 것이고 또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그 이상으로 심화되는 현상을 가져올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입학을 위한 최소이수과목을 과학 영역의 경우 ‘물화생지’ 4과목에서 2과목을 이수해야 했던 것을 2015학년도부터는 공통과학을 포함한 2과목으로 조정하여 사실상 2과목 이수에서 1과목 이수로 변경한다고 사전예고를 하였다. 많은 학교에서는 이러한 서울대의 기준에 맞추어 최소 올해 1학년이나 내년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에서는 문과생이 이수해야할 과학과목의 수를 2과목을 1과목으로 간단하게 변경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교육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기관인 서울대학교와 교육부의 안이 서로 180도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 교육은 없고 수능만 있는 것이다. 수능제도가 바뀌면 학교 현장의 기초가 되는 학교 교육과정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학교 교육과정에는 최소한 철학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교육과정 개편은 없고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만 있을 뿐이다. 대입제도 변경에 따라 대한민국 학교 교육 전체가 송두리 채 끌려가는 형상은 절대 바람직한 모습일 수 없다. 만약 변화가 필요하다면 근간이 되는 학교 현장의 교육과정부터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쳐 천천히 바꾸어 가면서 그 후에 대입 제도 개선을 언급하는 것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기본에 충실해야 확립될 수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학교 현직교사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