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고등학교가 1985년 황금사자기 이후 40년 만에 청룡기 야구 대회에서 우승했다. 지역의 어느 고등학교가 야구 대회에서 우승한 것에 불과했지만, 전라북도 전체가 우승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축하 분위기에 휩싸였다.
스포츠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매우 크다. 전주라는 지역에 대한 홍보 효과는 더욱 크다. 만약 전주고가 전국대회에서 한 번 더 우승한다면 지역의 명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당연히 언론은 칭찬 일색이다.
시속 156km 에이스 정우주 선수, 3학년 준에이스 이호민 선수, 2학년 포수 홈런 타자 이한림 등 모든 선수가 일치단결한 훈련과 노력의 결과로 맺은 풍성한 열매이다.
전국 각지에서 스카우트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선수를 하나로 융합하는 리더십을 가진 감독, 매주 주말 경기가 있을 때마다 동행하며 선수단을 뒷바라지했던 젊은 야구부장 선생님, 멀리서 후원하는 교직원, 그리고 최강 응원을 보여준 학생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야구부를 적극 후원하는 동문들의 힘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다른 학교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전주고등학교 야구의 우승 원동력을 체육 중점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찾고 싶다.
전주고에는 야구부와 농구부 두 개의 운동부가 있다. 운동 학생에게 교육과정 선택 기회를 제공하는 별도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고 있다. 운동 선생 중심의 학급이 편성되고 1학년 때부터 일반 학생과는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이 희망하는 체육 활동 관련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2, 3학년으로 갈수록 특히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 오후 시간에 체육 교과목을 중심으로 시간표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단점은 있다. 운동부 친구들끼리 같은 학급에 편성되어 3년 동안 생활하면서 일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일반 교실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현실을 볼 때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운동부가 아닌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하며 2학년부터 과목을 선택하는 데 희망하는 교과목이 없으면 체육지망 학생들의 기분은 어떨까?
전주고는 2018년부터 고교학점제 준비학교로 체육 중점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희망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이 희망하는 스포츠 과목을 수강 신청하고 정정당당하게 운동할 수 있게 되어 학교 내신에도 오히려 도움을 받게 되었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은 일찍부터 대학이나 프로팀으로부터 지명을 받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운동이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운동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기능이 조금 떨어지는 친구가 받쳐주지 못하면 팀 전체 플레이가 살아나지 못하는 단체 경기에서 이는 큰 문제다. 스포츠 경기는 우수 선수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하나 된 팀워크도 매우 중요하다. 체육 중점 교육과정의 편성 운영은 이러한 팀워크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몇몇 운동 이외에 학업을 꿈꾸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운동만 하는 친구들보다 훨씬 더 바쁜 생활을 하지만, 슬럼프에 빠지는 일은 적을 것이다. 체육 중점 학급의 운영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전주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은 고교학점제로 여러 과목을 지도해야 하는 부담이 큰데, 체육 중점 학급 운영으로 그 부담이 더 커졌다는 점, 체육 중점 학급이 체육 교과 중심 교육과정을 편성하면서 일반 학생이 상대적으로 내신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 등 부작용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이러한 위기에서 학교장은 다양한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육 철학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반대하는 교사들을 설득했다. 이때 중요한 설득 논리는 내년부터 실시하는 성취평가였다. 일반 학급에서 운동 선수가 함께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면 두 집단 사이에 발생하는 학업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대 평가에서 운동 선수를 위해 성취 기준을 무리하게 낮게 평가하다 보면 평가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다. 성취평가에서는 운동 선수를 위한 별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대하는 교사의 논리를 극복하고 체육 중점 교육과정을 묵묵히 운영한 결과, 예상보다 빠르게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가 체육뿐만 아니라 음악·미술 예능 분야에도 확산되어야 한다. 예능 분야 학생들도 진로 희망 분야에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끝으로, 체육 중점 학교 운영에 따라 체육 관련 전문 교사의 부족이 예상된다. 전국대회 우승에 따른 축하의 인사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성과의 지속을 위해서는 일회성 지원이 아닌 제도적인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