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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통보 위클래스 전문상담사들 왜 상처받았나


... 문수현 (2013-11-27 00:42:42)

전북교육청 학교 위클래스 전문상담사 116명이 계약종료 통보를 받았다. 사실상 해고통보다. 일선 학교에서는 도교육청 지시에 따라 전문상담사들을 일일이 만나 통보서를 수령했다는 확인증을 받고 있다. 상담사들 입장에서는 학교 행정실을 통해 서명을 재촉당하고 있는 셈이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전북지부에 속해있는 전문상담사들은 25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일요일인 전날에는 전주 시내 번화가인 객사 앞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서명도 받았다. 파업을 시작한 25일에 전북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여는 한편 어렵사리 교육감을 면담했다. 노조 관계자들과 함께 일선 학교 위클래스 전문상담사 세 명도 교육감을 만났다.

교육감실 밖에서는 동료 20여 명이 비서실에서 제공한 종이찻잔에 실낱 같은 기대를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1시간여 만에 교육감실 문을 열고 나온 면담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승환 교육감은 비정규직을 만들지 않겠다며 비정규직 신분인 이들에 대한 계약종료를 천명했고 이 방침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단다. 오히려 “작년에도 이 사업 안 받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계약종료 방침은 확고하다”고도 말했다. 학교 현장의 공백을 우려하는 전문상담사들에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여러분들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파업 이틀째인 26일, 전날 교육감을 면담한 전문상담사 중 두 명을 전북교육청 로비에서 만났다. 이들은 언론이 자신들의 싸움을 ‘무기계약직 전환 요구’로 압축해 보도하는 데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더 나은 고용형태를 보장하라거나 임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교육감을 만나서도 그런 요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날 전화로 통화했던 다른 전문상담사도 같은 말을 했다.

전북교육청이 전문상담사들을 해고하고 위클래스 운영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대안이 아니라고도 했다. 전북교육청은 학교에 설치된 위클래스를 없애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그 운영을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떠돌았다. 통로가 일정하지 않은 교육청 관계자들에게서 외부강사를 임용해 시간제로 운영한다거나 교육지원청 위센터 전문상담사를 순환근무하게 한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실제로 많은 교육청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계약직인 전문상담사를 해고한 뒤 임시방편 식 운영계획을 세워 우려를 낳았었다. 서울은 전문 인력이 없는 학교에 전문상담사가 순회상담을 하게 하고 대구는 160개 학교에 상담자원봉사자를 일정 시간 배치한다는 계획이었으며, 부산과 대구는 교육복지우선지원 대상 초등학교인 경우 교육복지사에게 상담업무까지 맡기려 했다.

전문상담사들은 이러한 땜질 식 운영방법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전문상담사 대부분은 자신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어머니다. 그래서 이들이 위기 학생들을 보는 시각은 남다르다. 학교폭력, 자살, 중독 같은 문제들은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실제로는 적지 않다. 수차례 자살을 기도해 손목에 또 다시 붕대를 감고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도 만난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학생들이 얼마나 아파하고 멍들어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일선 학교에서 위기 학생들이 전문상담사를 만나는 처음 한두 달은 이른바 ‘간 보는 시기’라고 한다. 상처 입은 아이들 입장에선 그만큼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렵다는 얘기다. 계약직인 전문상담사들이 근로계약을 맺는 9개월에서 11개월도 짧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20명 학생이 재학하는 학교 위클래스에서 일하는 한 전문상담사는 급식실 풍속도가 아이들의 그날 정서 상태라고 말한다. 누구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평소와 다르게 누가 누구 옆에 앉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모두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상주하며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도움으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 학생들의 경험을 ‘내면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학생이 상처를 딛고 일어나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보고 싶은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전문상담사는 단기간 계약이 끝나면 그만, 졸업식을 볼 수 없다. 전문상담사들의 또 다른, 하지만 결국은 같은 바람은 아이들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교육감을 면담한 또 다른 전문상담사는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는 우리에게 나가라는 말을 들으니 어이없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가지라고 얘기하는 우리가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도 말했다. 또 “우리는 비정규직이라 생각한 적이 없는데 ‘너는 비정규직이다’ 하고 딱 구분한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전문상담사들의 보수는 이것저것 떼고 나면 140여만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정규직 몇 사람의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다문화연결, 인성연결, 특수교육연결, 교육복지연결, 특히 진로연결 등 전문상담사들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런데도 제도가 시행된 2009년 이래 단 한번 임금을 올려달라거나 계약 조건을 개선하라거나 하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교육감실 면담 분위기가 어땠냐고 캐묻는 기자에게 노조 쪽 관계자들은 신중하게 입을 다물었지만, 한쪽에서는 “제가 언제 교육감 출마한다고 했습니까?”라고 정색하며 해고 반대활동 중에 나왔던 낙선운동 언급에 불쾌한 반응을 내보인 교육감에 대한 얘기가 새어나왔다. 자신들의 직업적 사명감을 “알아줄 줄 알았”던 상담사들은 “벽을 보고 얘기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한 전문상담사는 “소리 내지 않는다고 잘라내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정규직 해달라고 안했는데 이제는 해야 되겠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30~60시간 연수를 거쳐 진로진학상담교사를 양성하는 연수회에 함께 가면서도 교재도 주지 않고 연수회장에 들어오게도 하지 않는 일도 새삼 떠올랐다.

교원노조와 교육·시민단체들의 당혹스러운 침묵에도 불구하고 전문상담사들에게는 다행스럽게 전북도의회 의원들이 교육청에 이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내년 예산안을 수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전문상담사들의 말대로 “아이들 입장에 서서 숙고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