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전주 근영중학교에서 위(Wee)클래스 전문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입니다. 부족한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부모님들의 소중한 자녀가 몸담고 있는 교육의 현장에서 부모님들과 아이들 모르게 자행되고 있는 비교육적이고 비인격적인 상황을 알려드리고자 함입니다.
저는 올해 3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0개월 계약으로 채용된 학교 비정규직입니다. 학교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은 학생들의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해주어 학생이 자존감을 찾고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조력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서로 지지하고 공감하며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집단상담) 외부 전문기관에 학교폭력, 인터넷중독 예방, 성폭력 예방과 치료, 분노조절, 자기주장 교육 등을 의뢰하여 학생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국적인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에서 관리하거나 고위험에 처한 학생들을 선별하여 병원 등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또래상담사를 육성하여 어른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도와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은 쉽게 자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대하고 그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신뢰가 쌓이고 정이 들며 이러한 관계가 쌓일수록 아이들은 안전함을 느끼고 더 깊이 마음을 열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착이나 관계에서 상처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관계와 신뢰, 애착형성 자체가 치료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아이들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생과 선생님들의 관계, 학생들의 친구관계, 학교의 문화, 사건들의 패턴, 학생 한 명 한 명의 맥락, 각 반의 분위기, 학생의 가정환경 등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 그리고 개인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다수 지역에서는 학교상담을 활성화시키고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유독 전북만은 위(Wee)클래스 전문상담사 116명을 올해 12월 31일 전원 해고시키고 내년에는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합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 116명을 전부 자르겠다는 논리입니다.
그 대책으로 순회상담사를 활용하고 교사들에게 짧은 교육을 이수시켜 상담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거나 모든 담임을 상담교사화 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따듯한 인성과 인품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상담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아픈 아이의 입장과 이야기를 공감해주고 들어주기 보단 어른의 입장에서 훈계하고 훈육하고 교육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할 우려도 있습니다.
전문 상담사는 이 분야를 평생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왕따 당한 상처가 있는 아이,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우울증, 자살위험을 겪고 있어도 아이들은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징후를 빠르게 느끼고 형식적인 조치 이상으로 그 마음을 다뤄줄 수 있는 것이 전문상담사입니다.
지금도 위(Wee)클래스가 없는 학교는 순회상담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센터들도 학교에서 의뢰받은 아이들을 상담하고 있습니다. 1차 안전망인 위(Wee)클래스 전문상담사가 사라지면 지금의 순회상담과 센터로는 포화상태가 될 아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해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학교 내에 있는 고위험에 처한 학생들이 발견되지 않아 그 고통을 참다 평생 마음의 상처를 지고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상담사가 학교에 상주한다는 것은 심리적이고 실제적으로 ‘이어져있다’는 안정감을 학생들에게 제공합니다. 또한 학생의 감정이 폭발하거나 갑작스러운 사건들, 바로 조치해야 하는 순간들에 순회상담과 교사만으로는 즉각적이고 전문적인 대처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지금처럼 전문상담사와 교사가 협력할 때 효과는 극대화됩니다. 더불어 교사와 전문 상담사의 협력의 정도도 함께 한 시간에 따라 비례하게 됨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2~3개의 센터가 세워지고 몇 명의 순회상담사가 확충된다 하여도 이러한 형식적인 인원증가가 전문상담사 116명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가끔 정든 아이들이 묻습니다. 선생님 내년에도 있나요?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된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학생들은 이미 내년이면 사라지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합니까? 내년에는 없을 수도 있다고 대답해주면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묻습니다. 왜요?
저는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개인사정이 있다고 말하며 떠나야 합니까? “1년 이상이 되면 퇴직금을 주도록 되어 있어 그것을 피하기 위해 10개월 단위로 계약한다.” 또한 “2년 이상이 되면 무기계약직으로 변경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같은 학교에서 연 단위로는 계약하지 않고 다른 학교로 옮겨다녀야 한다.”
그리고 “사업이 종료되었을 때 소음없이 정리하기 위해 2년 이상 근무해서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없도록 1년에 2개월씩 간격을 둬 너희들의 졸업식도 보지 못하고 그만두게 한다”라고 진실을 말해줘야 하나요? 또는 “같은 학교에 다시 계약하더라도 2개월의 간격을 둬 퇴직금을 받지 않고 무기계약 요구를 하지 않게 한다”(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학교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법이 만들어진 의도를 교묘히 피해가고 법의 빈틈을 이용하여 형식적으로 지키기만 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알려줘야 합니까?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을 위해 법을 제정했으니 체면은 세웠습니다. 그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잘못인 것입니다. 법을 지켜야할 사람들은 법이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어 법을 어기지는 않았으니 문제가 없고 법을 좀 더 정밀하게 만들지 않았으니 법이 이상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법에 도움 받아야 할 사람은 도와주는 곳이 없는 이상한 구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항의하면 법대로 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던 법이 오히려 우리를 공격하는 병리적인 구조입니다.
학생은 어른들의 말이 아닌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웁니다. 교육의 기둥이 되는 장에서,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이나 도구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곳에서, 인간을 수단이나 도구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것을 보고 배웁니다. 학생들은 어른들보다 더 민감하게 이러한 부조리를 느낍니다.
그것이 안타깝고 무섭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교묘히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어른들과 사회의 부조리를 보며 학생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요?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 지금 우리가 겪는 일들을 또 다시 겪으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아픔은 우리 대에서 멈춰야 합니다.
전라북도교육청 교육감실 문 앞의 ‘가고 싶은 학교’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교육 공동체에서 저희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염려되고 보고 싶습니다. ‘가고 싶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학교에 전문상담사는 필요합니다. 시위하고 파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학교에 있지 않을 때 선생님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학교에 일이 생겼는데 아이가 염려된다고, 선생님 언제 오시냐고 합니다. 저는 아이가 염려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년에도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파업해야 하나요, 지금 걱정되는 아이를 보러 달려가야 하나요? 왜 이런 갈등을 해야만 합니까.
예산의 분배! 중요하지요. 언젠가 정규직 상담교사로 모든 학교를 다 채울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 공백 기간에 상처입지 않을 수 있었을 수많은 아이들이 평생 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 아이들이 바로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어른들의 계산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주세요.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결정에서 아무 말 못하고 힘 있는 어른들의 논리에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아무 잘못 없는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