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이 끔직한 사태는 왜 발생했는가? 이 글은 그 원인을 우리사회의 멀지 않은 과거와 현실의 작동방식에서 찾아내 보이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다. 사회운동단체인 <사회진보연대> ‘세월호 대응팀’ 활동가들이 보내왔다. 사회진보연대 주간 웹소식지인 ‘사회화와 노동’ 2014년 특별호 제4호(2014.5.31.)에 실렸고, 5월 31일 ‘세월호 참사 3차 범국민 촛불행동’ 때 배포됐다. 두 번에 나눠 싣는다.
※ 사회진보연대(www.pssp.org)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일구어 나가기 위해 사회운동의 사상 이념의 재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에 대한 국제적 민중적 대안의 모색,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혁신을 주요한 기치로 1998년 출범했다. 사회운동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 이론 정책연구, 교육사업, 연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편집자 주]
글 = 박상은, 배병근(사회진보연대 세월호대응팀)
"서해 훼리호 침몰, 단 하나의 교훈도 얻지 못했다"
1993년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292명이라는 아까운 생명을 잃고 나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고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 그때도 대책은 ‘노후 선박 교체’
당시 김영삼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 중 하나로 노후 선박 교체를 내놓았지만, 그 뒤 일곱 차례에 걸친 선령 제한 제도 개정에서 단 한 차례도 선령 제한이 강화된 적이 없다.
선령 제한이 미흡하더라도 검사가 엄격하면 위험한 배는 자연스럽게 퇴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검사 규정은 조금씩 완화되었고, 검사 체계도 엉망인 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는 복원력 검사에서 한 차례 떨어졌지만 별다른 보완없이 2차 검사에서는 그냥 통과되었던 것이다.
서해 훼리호 구난장비는 사고 보름 전에 선박안전 검사에서 모두 양호 판정을 받았지만, 사고 당시에 구명정이 2개만 작동했다. 그 후 구명정 부실수리 업자가 구속되기까지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세월호에서도 구명정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 그때도 대책은 ‘과적 방지’
서해 훼리호 침몰의 가장 큰 원인은 과적이었다. 당연히 대책에도 ‘과적 방지’가 들어갔다. 훼리호 사고를 조사한 합동조사반은 선박 안전을 위해 과적·과승에 대한 엄격한 행정지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지만, 이후에도 현장검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재흘수선 기준(배의 앞뒤에 표시된 선, 이것이 잠기는 것으로 과적 여부 판단)은 훼리호 사고 이후인 1999년에 선박안전법에 명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대책으로는 과적을 방지할 수 없었다. 훼리호 사고 이후에도 선박 검사를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 그대로 맡겨두었기 때문이다.
해운조합의 대충대충 검사는 평형수를 빼서 만재흘수선을 보이게 하는 꼼수를 잡아내지 못했고, 세월호는 결국 더 위험한 상황에서 항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부실공사는 계속된다"
‘부실공사 추방원년’인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당시 서울시장이 경질되었다. 이듬해 삼풍백화점도 주저앉았다. 전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부실공사와 소홀한 안전관리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정부는 각종 부실공사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 법은 제자리 맴돌기, 현실은 뒷걸음질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 대참사가 빚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이전에도 설계, 시공, 감리, 관리 전 과정에 걸쳐 문제를 검토하고 처벌할 수 있는 제도는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은 단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부실공사 방지는 발주자와 건설업체의 수익 하락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다단계 도급구조에서 발주자와 원도급업체 뿐 아니라 하도급업체에게도 공사비를 아끼고 공사기간을 단축하는 ‘날림공사’가 필수였다. 설계자와 감리자가 발주자 눈치를 보는 ‘봐주기식 감리’는 관행이었다.
붕괴사고 뒤 정부는 관련자 처벌 강화, 설계 및 감리제도 강화, 입찰제도 개선, 불법하도급 근절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고가 기억에서 잊힐 즈음 부실방지 대책은 경쟁력 강화 대책으로 탈바꿈했고 안전문제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원안은 후퇴한다. 감리 강화는 공문구가 되었고, 전담 안전 관리자를 두어야 하는 건설사업장 범위도 대폭 축소되었다. 부실공사 사고가 나도 발주처와 원도급 업체는 아예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에 그쳤다.
○ 부실공사는 계속된다
2천 년대 후반에도 백화점, 호텔, 병원 등의 불법 증·개축과 용도변경이 빈발하고, 안전성 위험 판정을 받은 아파트, 공공시설물 등의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올초 1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원인도 저렴한 자재와 공법을 사용한 데 있었다. 이윤 극대화를 규제하지 않는 한 부실공사와 붕괴사고는 계속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가 나도 안전인력은 줄인다"
○ 참사의 교훈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사고 원인으로 △전동차 내장재의 문제 △취약한 방재시스템 △1인 승무제를 비롯한 안전요원의 부족이 꼽혔다. 다행히 전동차 내장재 교체와 방재시스템의 개선에서는 성과가 있었다. 5월 28일 도곡역에서 일어난 전동차 방화사건이 참사로 번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내장재의 교체였다.
○ 누군가는 불을 꺼야 한다
하지만 불연재 교체만으로 화재가 번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군가 침착하고 빠르게 불을 꺼야 하는 것이다. 이번 도곡역 사고에서는 기관사가 관제소에 연락하고 열차 내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는 동안, 도곡역에 탑승했던 매봉역 역무원이 달려와 바로 불을 껐기 때문에 불이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책방향은 역사와 기관차 내의 인원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 확산되는 무인역사·무인운전
사고 직후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은 2인 승무를 통해 안전도를 높이자고 주장했다. 회사는 안전도 중요하지만 효율성과 비용절감도 중요하다, 설마 같은 사고가 또 나겠냐고 맞섰다. 당시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88일 동안 파업했지만 부족인력채용 약속만 받아냈을 뿐 2인 승무는 도입되지 않았다.
역무원은 더 줄어들었다.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에는 역무원이 그나마 3명이 있어 안내방송을 하고 대피시키는 역할을 나누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표를 자동화하면서 역무원이 줄어들었다. 야간에는 무조건 1인 근무이다.
대구지하철은 새로 개통하는 3호선을 무인역사로 만들려 하고 있다.현재 신분당선은 지하철 운행 자체가 자동으로 되는 무인운전시스템이다. 문제가 생기면 승객들이 알아서 대처하고 탈출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이런 위험한 지하철과 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