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민족미술인협회(회장 이기홍) 정기기획전 ‘갑오세 통일로’ 展이 4일부터 10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북민미협 회원이자 지역에 터 잡고 활동하고 있는 중견 미술가 27명이 참여했다.
전북민미협은 해마다 현실참여적인 메시지를 담은 정기기획전을 벌여왔고, 이번 기획전시회의 주제는 ‘동학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이다.
참여 작가들은 동학농민혁명 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 최근의 굵직한 사건들도 화폭과 전시공간에 담았다.
<김개남-백산에 서다>와 <녹두장군>을 출품한 진창윤씨는 “동학농민혁명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드문 거대한 변혁운동인데도 예술작품은 너무도 빈약하다”며 예술가들의 책무를 강조했다.

(사진: 진창윤 작 <김개남-백산에 서다>(왼쪽), <녹두장군>)
이번 전시 작품들에는 실패와 절망의 역사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존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작가들의 집념이 담겨 있다.
시인 박남준의 <나도야 물들어간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 박은주씨는 인간의 참다운 행복이 유희에 있다고 보고,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물이 하얀 실을 타고 올라가는 설치 작품을 전시했다. 생명이 하찮게 여겨지는 풍조에 안타까워하면서, 숨 쉬고 보고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작가의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사진: 김윤숙 작 <살아있다>. 인물은 작가)
김윤숙씨는 600년을 넘게 살아온 느티나무를 그렸다. 작품 제작을 위해 전봉준 생가를 답사했고, 온몸이 상처투성이면서도 600년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고목에 주목했다. 그림 주변에 설치한 물고기 부적들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 역시 이 고목처럼 오래 살아있다는 치유와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진: 이기홍, 고형숙, 박세혜 작 <수(壽)>)
전시실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설치작품인 <수(壽)>는 이기홍 화백이 감독하고 고형숙, 박세혜 작가가 함께 제작한 대작이다.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면 부안 백산의 형상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의미하는 304개의 물방울(에어포켓) 안에는 인물상과 국화꽃이 놓였다. 또 120년 전 갑오농민전쟁에서 최근 세월호 참사까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6분짜리 영상에 담았다.

(사진: 강현화 작 <사발통문-갑오, 꽃피우다> 세부)

(사진: 강현화 작 <사발통문-갑오, 꽃피우다>. 인물은 작가)
서양화가 강현화씨의 <사발통문-갑오, 꽃피우다>는 작가가 하나하나 수채물감으로 그리고 직접 제작한 달개 900여개를 사발통문 모양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사발통문의 정신이 오늘날 널리 계승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달개 하나하나에는 진달래꽃이 꽃술까지 세밀하게 표현돼 있고, ‘갑오, 꽃피우다’라는 문구와 작가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은 전시 마지막 날인 10일 오후 1시에 관람객들이 나눠가질 수 있다.

(사진: 황의성 작 <스러진 넋을 세우고>)
황의성씨는 아크릴칼라와 오일칼라, 석고 등을 이용해 가로 10m30cm 세로 1m26cm 크기의 작품 <스러진 넋을 세우고>를 출품했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지인 동진강 물과 농민군 등 익명의 희생자들을 표현했다. 작가는 스러져 간 혼백에 대한 제사적 의미를 이 작품에 담았다.

(사진: 한숙 작 <꿈>)
한숙씨의 <꿈>은 칠흑의 밤 봉준의 집에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불빛이 새나오고, 산속 동물과 엉겅퀴, 민들레 등 꽃과 나무들로 묘사된 민초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한다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는 작가들이 동학농민혁명 전적지에 대한 사전답사와 강연 등을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현장답사에서는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의 저자인 이광재씨가 직접 안내를 맡기도 했다.

(사진: 기획자와 참여작가들,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