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중·고등학생의 평일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48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 평균 수면시간 6시간 53분(2013년 한국갤럽 조사)이 OECD 18개국 중 꼴찌로써 매우 열악한 점을 감안할 때, 학생 수면시간 5시간 48분은 몹시 위험한 수준이다.
이 시간은 또한 일본 7시간 42분, 독일 8시간 6분, 미국 9시간 36분 등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시간이다.
한편 서울학생의 하루 학습시간은 9시간 33분으로 미국 3시간 21분, 영국 3시간 49분, 독일 5시간 2분 등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이처럼 서울학생은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학습시간은 현저히 길고 수면시간은 월등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서울학생의 평일 하루 평균 휴식시간은 2시간 24분으로 나타났다. 역시 OECD 가입국 중 하위권인 한국 성인 평균 휴식시간 3시간 18분과도 대비된다.
서울학생들은 특히, 휴식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입시관련 공부시간’과 함께 ‘교사와 부모 등 어른들의 눈치’를, 휴식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입시경쟁 교육제도’와 함께 ‘교사와 학부모 등 어른들의 인식 변화’를 가장 크게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들은 청소년단체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이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의 후원으로 지난 5월 17일~6월 21일과 7월 2일~18일 두 차례에 걸쳐 53일 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나타났다.
아수나로 서울모임은 서울지역 중학생 825명과 고등학생 2,094명 등 총 2,9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13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7층 배움터에서 ‘서울학생 휴식권 실태 발표회’를 가졌다. 아수나로 서울모임은 이번 조사의 신뢰수준이 95%이며 표본오차는 ±1.81%p라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생 2명 중 1명은 수면·휴식시간에 만족하지 못했고, 특히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의 만족도가 16% 정도 낮았다. 학습시간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면시간이 감소해 만족도가 동반 감소한 것이다.
한편 학교가 학생의 휴일 휴식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학생이 전체 응답자의 3분의 2에 달해, 학생들에게 연휴는 쉬는 날이기 보다 공부하는 날이었다.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끌어올릴 목적으로 주말이나 연휴, 징검다리 연휴를 포함해 시험기간을 배치(66.1%)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학생을 위한 휴식공간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44.5%로 절반을 넘지 못했고, 학교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조퇴할 수 있다고 한 학생 또한 46.9%로 절반에 못 미쳤다.
더욱이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명시돼 있는 ‘학생 휴식권’에 대해 안내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전체의 16.6%에 불과했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휴식을 인권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설문은 학생들이 쉴 때 느끼는 감정과 학생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희망 수면·휴식시간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생 3명 중 2명은 쉬면서도 불안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쉴 때 느끼는 감정이나 기분을 8개 지문을 제시하고 2개씩 선택하도록 한 결과, ‘편안하다’와 ‘즐겁다’의 응답 비율이 21.9%와 21.6%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쉴 때 ‘편안하다’ 혹은 ‘즐겁다’고 대답한 학생들 중 3분의 1이 ‘초조하다’, ‘쉰 것 같지 않다’, ‘불안하다’, ‘불편하다’, ‘죄책감이 든다’, ‘당황스럽다’ 등 부정적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학생들이 쉴 때 편안함이나 즐거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경쟁교육의 압박이나 휴식시간 부족에 대한 불만 등을 함께 느껴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대목은 학생들이 휴식방해요인으로 지목한 것들이다. 1순위에 오른 것은 ‘학교수업, 방과후학교, 야자, 학원, 과외, 수행평가, 숙제 등 입시관련 공부시간’(34.6%)였고, 2순위가 ‘교사, 부모 등 어른들의 눈치’, 3순위가 ‘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감과 경쟁의식’(19.8%)이었다.
결국 과도한 공부일정으로 인한 시간 부족, 본인이 경쟁교육 안에서 느끼는 부담감, 그리고 교사와 부모의 인식이 학생들의 휴식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학생들이 휴식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입시경쟁교육제도 개선’과 ‘교사, 부모 등 어른들의 인식 전환’, ‘입시관련 공부시간 축소’ 등이었다.
고등학생들이 ‘입시경쟁교육제도 개선’을 가장 많이 꼽은 데 비해, 중학생들은 ‘어른들의 인식 개선’을 가장 많이 꼽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아울러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생 휴식을 위해 입시경쟁교육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대답한 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입시경쟁 체감도가 증가함에 따라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조사는 고등학교의 형태에 따른 실태와 만족도 등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특목고 학생들의 수면·휴식시간이 가장 적고 학습시간은 가장 길었으며, 수면만족도 또한 특목고와 자공고 학생들이 각각 32.5%와 31.4%로 전체평균(41%)보다 9~10% 낮았다.
학생 휴식권 보장 실태를 분석한 항목에서도 특목고는 학생들에게 강제 방과후학교나 야간자율학습을 가장 많이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과후학교와 야자 참가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로 응답한 특목고 학생의 비율은 62.5%에 달해 설문 전체평균 18.2%의 3배를 웃돌았다.
또한 ‘학교게시판이나 교실의 급훈에 휴식에 대한 부담을 주는 표어가 붙어있다’는 설문에 ‘그렇다’로 응답한 특목고 학생의 비율이 45.0%로 설문 전체평균 22.3%의 2배가 넘었다. 특목고가 학생들 간의 경쟁의식을 가장 많이 고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수나로 서울모임은 “우려한 대로,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휴식권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으며, 휴식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반적으로 부족했음을 확인했다”며 “교육당국은 학습시간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휴식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과다한 학습시간과 학생들의 휴식권 침해는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로 인해 생겨난 부산물에 불과하다”면서 “교육당국은 현재의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제도가 학생들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발표회에서는 ‘2014 서울학생 휴식권 실태의 국제비교’ 자료도 소개됐다. 해외 통계, 권고, 기준과의 비교를 통해 서울학생들의 휴식권 실태가 어느 수준인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비교 국가는 모두 7개국이다. 지난 2009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아동·청소년의 생활패턴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에서 선정한 미국, 핀란드, 스웨덴, 독일, 영국 등 5개국에 서울(아수나로 조사)과 일본의 통계를 더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의 통계는 아수나로 서울모임이 최근 자료를 직접 번역해 보완했다.

(출처: <2014 서울학생 휴식권 실태의 국제비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

(출처: <2014 서울학생 휴식권 실태의 국제비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
학습시간을 비교 분석한 결과 서울학생들의 학습시간은 1일 평균 9시간 33분으로 비교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았다. 비교 국가들의 평균 학습시간은 일본 5시간 48분, 미국 3시간 21분, 핀란드 6시간 6분, 스웨덴 5시간 55분, 독일 5시간 2분, 영국 3시간 49분 등으로 6개 국가의 평균 학습시간은 5시간 수준이다. 서울학생 형균 학습시간 9시간 33분은 해외평균치의 2배에 가깝다.
반면 수면시간의 경우 서울학생들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학생들의 수면시간은 5시간 48분인 반면 일본 7시간 42분, 미국 10시간 26분(세면, 건강관리 시간 제외하면 9시간 36분), 핀란드 8시간 31분, 스웨덴 8시간 26분, 독일 8시간 6분, 영국 8시간 36분으로 나타났다.
조사국 모두 미국국립수면재단 등에서 발표한 ‘청소년 권장수면시간’에 준하는 만큼의 수면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서울학생들의 수면시간은 권장시간에 훨씬 못 미쳤다.
눈길을 끄는 점은 조사국 중 한국과 유사한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일본보다도 서울학생들의 학습시간이 1일 평균 약 4시간 가까이 많고, 수면시간은 2시간 이상 적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학생들의 입시경쟁에 따른 학습 부담이 미국 및 유럽국가들 뿐 아니라 비슷한 입시경쟁 교육시스템을 갖고 있는 일본에 비해서도 훨씬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국립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을 경우 사고,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경고하면서 10대 청소년의 수면 시간을 8시간 30분에서 9시간 15분 사이로 권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국립수면재단은 “잠은 모두에게 필수적이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은 청소년이 정보를 충분히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청소년의 충분한 수면을 위해 이른 아침 등교시간을 늦추고 수면을 중요시하는 ‘수면친화적인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 학생들이 희망하는 수면시간은 실제 수면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많은 7시간 42분으로, 미국수면재단이 권장한 시간의 최소치에 비하면 1시간 가까이 적다. 한국학생들에게 희망 수면시간 2시간은 그만큼 절실하다는 얘기가 된다.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국제조약은 “휴식은 중요한 인권”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가입당사국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UN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17호’는 “긍정적인 배움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놀이와 오락, 여가와 문화적·예술적 활동에 대한 권리와 그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인식 형성”을 당사국의 과제로 부여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UN아동권리위원회가 지난 1996년 한국의 “극도로 경쟁적인 특성을 가진 교육제도”를 지적한 아래 “여전히 현저하고 심각하게 경쟁적인 교육환경에 대해 우려”하면서 “아동이 심각한 과잉의 스트레스와 신체적·정신적 건강 악화를 겪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한편 이번 서울학생 휴식권 실태조사와 발표가 오로지 청소년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해 8~9월 부산 중고등학생 7,399명을 설문조사해 체벌과 두발 단속 등 광범위하고 ‘전근대적인’ 학생인권침해 실태를 폭로한 것도 청소년 당사자들이었다.
이번 서울조사에서는 특히 교사와 학부모가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교사와 학부모 운동이 교육개혁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청소년과 학생들의 인권 보호에는 소홀했다는 일부의 지적과 무관하지 않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