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청소년인권 지원단체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와 전교조가 공동으로 벌인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 학생인권은 학교 안에서 가장 많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본부는 지난 9월 13일부터 10월 4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 5,845명을 대상으로 체벌, 두발규제, 강제학습 등 그동안 문제가 되어온 학생인권침해 사항들의 개선 여부를 확인하는 실태조사를 벌였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응답 결과를 토대로 각 지역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들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교육청과 교육부에 구체적인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조사는 △체벌(폭력) △두발 및 복장규제 △강제 야자 및 보충 △학생참여 △상벌점제 등 대표적인 학생인권 의제를 다뤘다.
조사 결과, 체벌, 두발․복장단속, 강제 학습, 학생 의견 묵살 등 오래 전부터 개선이 요구돼 온 학생인권 문제들이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본부는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비롯해 지역 차원의 학생인권 운동 경험이 거의 없었거나 교육청이나 의회에 의해 학생인권정책이 가로막힌 지역의 경우, 학생인권 침해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밖의 학생인권 문제와 학교생활 전반을 살펴보았을 때는 학생인권조례 등의 정책이 시행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의 유의미한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며 “학생 참여와 의사표현 억압, 상벌점제로 인한 폐해 등의 문제의 경우, 모든 지역의 경험률이 대동소이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최근 1년간 교사에 의한 체벌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는지 묻는 설문에 자주 또는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이 45.8%에 달했다. 학생 두 명 중 한 명은 학교에서 맞거나 폭력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앉았다 일어서기’ 등 기합성 체벌의 경우, 자주 또한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이 60%로 올라섰다.
교사에 의한 언어폭력 경험을 묻는 설문에는 응답자 중 42.6%가 자주 또는 가끔 경험한다고 답했다. 언어폭력에는 욕설이나 놀림, 저주나 증오심이 담긴 말, 부모 비난 등이 포함되는데, 체벌과 마찬가지로 학생에게 정신적 고통과 수치심을 야기하는 폭력이다.
학생들이 폭력을 가장 자주 당하는 장소는 학교였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체벌이나 언어폭력을 경험한다고 답한 학생들만 살펴보면, 폭력이 발생한 장소가 학교인 경우는 40.4%, 학원 등지인 경우는 16.1%, 가정인 경우는 12%였다.
집에서는 학생 열 명 중 한 명 꼴로 일주일에 한번 이상 체벌이나 언어폭력을 경험하고 있는 데 반해, 학교에서는 무려 절반 가까이가 일주일에 한번 이상 교사로부터 폭력을 경험하고 있었다.
두발 규제의 경우, 49.9%가 두발길이에 대한 규제를 경험하고 있었고 머리 색깔이나 모양에 대한 규제를 경험하고 있는 학생은 78.5%에 달했다. 복장 규제의 경우에도 자주 경험한다고 답한 학생이 44.1%, 가끔 경험한다고 답한 학생까지 합치면 무려 68.5%에 이르렀다. 지정된 교복 착용 이외에 양말 색깔이나 외투 착용 여부까지 단속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도한 통제라는 지적이다.
또한 방과후학교나 보충수업, 야간학습 등에 대한 강제가 자주 또는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이 53.9%에 이르러 절반 이상이 강제학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교과 외 교육활동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학습에 대한 부담만 가중시키는 셈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조차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당한 경험이 자주 있다고 답한 학생은 무려 69.5%에 달했다. 가끔 있다고 답한 학생까지 합하면 76.8%에 이른다. 휴대전화 규제를 정당화하는 주요 논리가 '수업 방해'임에 비춰보면, 수업과 관련 없는 학생의 자유시간에도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는 지적이다.
성적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학생도 절반에 가까웠다. 지난 1년간 성적(점수/등수) 공개나 성적을 이유로 모욕감을 주는 일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40.6%의 학생이 자주 또는 가끔 있다고 답했다.
한편 학칙의 제·개정에 학생 의견이 잘 반영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셋 중 둘은 학생의견이 묵살된다고 답했다. 또한 학칙을 제외하고 수업이나 일상생활에서 학생들이 의견을 말할 때 잘 반영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한 학생이 33.5%, 별로 그렇지 않다고 답한 학생까지 합하면 72.9%에 달했다.
심지어 자기 의견을 말할 때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된다고 답한 학생의 경우도 매우 그렇다가 24.4%, 조금 그렇다가 33.3%로 불이익에 대한 염려로 침묵하는 학생 역시 57.7%에 이르렀다.
세 명 중 두 명은 벌점 또는 상점을 주는 기준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응답했고,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에도 벌점을 준다는 응답도 50.2%로 절반이 넘었다. 벌점이나 상점을 무기로 학생을 협박한다고 답한 학생도 49.9%나 됐고, 교사와 학생 사이가 멀어진다고 답한 학생이 41.4%로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폐해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벌점제 도입 명분은 학생의 문제행동을 교정하고 좋은 행동에 대해서는 상점을 부여함으로써 학생의 학교생활을 돕는다는 것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고 규율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기숙사 생활 학생의 경우, △자습 강요(27.9%) △소지품 검사(22.0%) △교사에 의한 기합성 폭력(18.8%) 등을 겪었고, 선후배 사이의 폭력이나 기합, 성폭력 발생율도 각각 12.2%와 1.6%로 조사돼 학생 간 폭력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학생인권의 뜻, 내용, 학생인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 등 학교에서 배운 경험을 묻는 질문에 열 중 한 명꼴인 11.6%만 ‘받아본 적 있다’고 답했다.
한편, 학교생활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면서 학생들 셋 중 한 명(35.8%)은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고 응답했다. 학교가 학생을 다양한 이유로 차별적으로 대한다고 답한 학생도 54.9%에 달해 절반 이상이 학교의 불공정성과 부당대우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교사의 생활지도 방식을 포함한 학교 규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한 학생도 57.8%에 달했다. 학교가 다수의 학생들에게 고통과 압박의 장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생인권을 존중하면 학생도 교사를 존중한다'는 문장에 대해 학생들은 46.9%가 매우 그렇다, 34.9%가 조금 그렇다고 응답했다(합 81.8%).
조사 결과를 평가하면서 운동본부는 “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하여 지역 차원의 학생인권 정책이 조금이라도 시행되고 있는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인권침해 빈도가 낮다는 것은 희망적이나, 동시에 이들 지역의 변화마저도 미비하다는 사실은 커다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