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70일을 맞은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은 아동복지법 규정을 따라 18세 미만인 사람을 아동으로 규정한다. 학생의 대부분은 아동이다. 따라서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의 체벌도 특례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데는 법리적으로 이견이 많지 않다.
하지만 체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정서, 특히 교원들의 인식은 뿌리가 깊다. 아동보호를 위해 제정한 특례법이 과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9일 <‘아동학대’의 눈으로 본 체벌과 학생인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9월 29일부터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을 체벌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학대와 체벌 사이의 관계’를 발제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공현씨는 “체벌은 학대의 한 유형이며, 사회통념상 허용되어온 체벌이란 약한 수준의 학대”라며 “학교와 가정을 포함해 모든 체벌을 학대에 포함시키고 금지하는 것은 법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현씨는 하지만 “체벌은 필요하거나 심지어 올바른 것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아동학대’의 범위를 넓히고 그 적용을 확실히 하는 것도 ‘정치적인’ 문제”라고 말해 사회적 인식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학교 체벌과 학대’에 대해 발제한 민변 김병희 변호사는 “아동학대특례법을 학교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문제는 없어 보인다”며 “하지만 더 좋은 것은 ‘학교체벌에 관한 특별법’ 등을 제정해 체벌을 따로 관리하는 게 옳아 보인다”고 제안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우리나라는 교사의 권위 즉 교권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면서 “교권은 학생으로부터 존중받을 때 확립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아수나로 준영 회원(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체벌은 대부분 교사의 자의에 따른 것이었고, 폭력에 질책과 폭언이 동반됐다”며 “체벌은 익숙해지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근절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준영씨는 “학교에서 아동학대특례법과 관련한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청 등이 교사에 의한 폭력을 아동학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토론자인 세이브더칠드런 김은정 국내옹호팀장은 체벌에 관대한 한국 사회에서 체벌 근절을 위해 가능한 활동을 소개했다.
김 팀장은, 1979년 스웨덴이 <부모 및 보호자법>에 ‘체벌’ 금지를 명시한 최초의 법을 만든 이후 현재까지 43개 나라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법제화과정을 거쳤다고 소개했다.
이들 나라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체벌을 확실하게 금지하려면 법에 반드시 ‘체벌’이라는 말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정을 포함해 체벌의 완전한 금지 입법을 달성한 나라들 대부분은 대중의 지지와 공감을 얻기에 앞서 입법에 나섰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중을 이끌어나갔다는 것이다. 아동보호법 입법 절차의 특성에 대한 지적이다.
김 팀장도 “체벌이 사회적·문화적으로 훈육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선 체벌을 해롭고 모욕적이거나 폭력적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고 지적해, 사회적 인식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체벌 등을 ‘청소년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종합적으로 대처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은, 아동에 대한 학대행위는 성장 단계에 있는 아동의 정서 및 건강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전제에서,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아동학대범죄가 발생한 경우 긴급한 조치와 보호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지난 1월 제정됐다.
특히 지난해 울산과 칠곡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법 제정에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