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진문화재단은 내년도 청년작가초대전에 초대할 전북지역 젊은 미술가 세 명을 선정했다. 서양화가 서완호(32. 왼쪽 사진)씨는 그 중 한 명이다.
서 작가가 심사위원에게 보낸 작품은 지난 2011년 첫 번째 개인전 'EMPTY'부터 2014년 최근의 네 번째 개인전 'SALIVATE'까지 발표한 작품들에서 선정한 것들이다.
심사평을 쓴 경기도립미술관 최효준 관장은 서 작가에 대해 “묘사력 면에서 탁월하고, 그것이 작품성을 높이는 든든한 바탕이 되고 있어 잠재적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호평했다.
그의 여러 작품 속 인물들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모습을 하고 있다. 작품을 대하는 관람자는 대체로 “그래서, 이게 어떻다는 거지?” 하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작품 속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농축돼 있다. 작가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궁리하는 일은 내 작업의 시작과 끝에 있다”며 “최근 2년간 이어온 작업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과 상황을 ‘비닐’이라는 상징물을 이용해 좀 더 명징하게 드러내고자 한 시도이자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비닐봉지라는 소재는 대량생산되는 물질로써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면서, 쉽게 쓰이고 쉽게 버려지는 ‘존재감 없는’ 물질이기도 하다.
비닐봉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몰개성과 가벼운 존재감, 고독과 소외감, 서로 폐쇄돼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을 옭아매고 강박적 상황에 빠뜨리는 ‘시스템’이라는 굴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두려움 섞인 표정을 그린 것이다.

(The Face, oil on canvas, 116.8x91.0cm, 2013)
그는 일반적인 회화 기법으로, 곧 유화물감을 짜서 붓에 묻혀 그림을 그린다. 비닐봉지와 피부의 사실적인 질감은 그의 붓질을 거쳐 탄생했다. 하지만, 흔히 관람자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사진이라고 착각한다.
이에 대해 서 작가는 “피부의 질감이 도드라져 고기 같다는 느낌마저 줄 텐데, 이는 보는 사람이 사진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라며 “보여주고 싶은 것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그의 그림들은 도록이나 기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제 그림은 직접 봐야 합니다.”
그는 사실적인 질감 표현을 위해 유화물감을 선택한다. 서 작가는 많은 화가들이 회화 재료로 즐겨 쓰는 아크릴물감을 쓰지 않는다. 그는 “아크릴은 예쁘고 깔끔하게 그리는 데 특화된 재료”라며 “아직까지는 유화물감이 더 깊고 다양한 색깔을 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 작가는 기법 그 자체보다는 내용을 관람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자신이 매 작품에 대한 작가노트를 쓰듯이, 관람자도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는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고 믿는다.

(Empty, 91x116.7cm, oil on canvas and spray, 2014)
한편, 최근 서 작가는 “어느 순간, 비닐이 효과적인 메타포(은유)가 아니라 하나의 슬로건(구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거대한 시스템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담아내기엔 제한된 소재”라는 자기비판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은 “여전히 절망적인 세계라는 나의 생각은 바꾸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고 꿈을 꾸고 있는 존재”라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아직 설계 중이지만, 그의 내년 작업은 개인의 내면에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면서 감정도 표현하는 그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작품 중에는 학생을 그린 것도 있다. 작가는 자신이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극렬하고 감정적이며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무리”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입시라는 시스템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처음 만나게 되는 시기는 대학교 이전이라는 것이다.

(Empty, 162.0x130.3cm, oil on canvas, 2013)
서완호 작가는 전북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현재 같은 대학 미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네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8년 이후 최근까지 모두 29차례의 기획 및 초대전에 참여했다. 가장 최근 참여한 초대전은 필리핀 라살미술관에서 열린 ‘Viva Excon 2014’로, 뉴욕타임즈는 참여작가 40명 가운데 서 작가의 작품을 대표로 신문에 게재하면서 이 전시회를 소개했다.
서완호 작가의 작가관과 그 바탕이 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그의 최근 졸업논문인 「인간의 사회병리 현상을 표현한 작업의 연구: 본인 작업을 중심으로」(전북대 석사, 2013)를 참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