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5-04-23 00:34:55

삶을 마주하며 깨달음을 그리다


... 문수현 (2014-12-22 18:21:48)

IMG
“나는 식물에 관심이 많다. 식물에는 생명이 있고 그 힘이 자라는 모양대로 그 모습이 만들어져 간다. 언젠가 화분에 담긴 지치고 마른 식물을 그리면서 이 식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화분’에서 나와 울창한 숲에 뿌리박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양화가 김수진(44.사진) 씨가 15년 전 자신의 작품 <부르짖는 자의 샘>에 붙인 말이다. 작가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부르짖는 자의 샘>은 성경에서 인용한 말로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을 상징한다. 그는 꿈, 이상, 생명, 구원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못 찾고 있거나,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다.”

김 작가는 2005년 다섯 번째 개인전 이후 꽤 긴 공백기를 거친 뒤 2013년에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김 작가는 미뤄둔 작업에 대한 갈증을 풀듯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즐거워하고 있다.

우진문화재단은 그런 그를 알아보고 ‘2015 청년 초대작가’로 서완호·이은경씨와 함께 선정했다.


(나에게 일곱길이 있다2, 60.0x39.0cm, 목판화, 2014)

경기도립미술관 최효준 관장은 초대작가 선정 심사평에서 “여러 해 꾸준하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기량 면에서 공감을 끌어냈다”고 호평했다.

김 작가 자신은 그림을 그리면서 ‘페미니즘’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 같은 평에 대해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며 자기성찰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최 관장은 또한 “분방하고 과감한 터치와 색감, 강렬한 메시지 등이 뚜렷하게 개성적”이라고 칭찬했다.


(짓다,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14)

10년 전인 2004년 제5회 광주신세계미술제 수상작가로 선정될 때도 비슷한 평과 함께 기대를 모았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박영택 경기대 교수와 윤동천 서울대 교수는 김 작가에 대해 “일관된 주제를 다채롭게 그림으로 풀어나가는 손의 맛, 상상력(이 뛰어나며)”, “자신의 일상, 자기의 몸, 자기만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연결짓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유능하다.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책을 읽을 때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듯,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린다. 하지만 사실을 그림에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음에 와 닿는 말이나 글,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어떤 형태나 색 등에 대한 개인적인 ‘깨달음’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달려갈 길,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14)

그래서 작품에는 작가의 인생관이 짙게 배 있다. <달려갈 길>은 작가가 살아가야 할 인생길을 뜻한다. 작가에게 인생길이란 “온 마음을 다해 살아나가는 길”이자 “후회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잘, 행복하게 살아내야 할 길”이다.


(풍랑,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14)

<풍랑>은 인생을 관조하는 인물의 뒷모습과 요동치는 푸른색 바다를 그린 작품이다. 풍랑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고난이나 예기치 않은 사고 등을 뜻한다. 뒷짐 진 인물은 이에 맞서기도 하고 담담히 바라보며 이겨나가기도 한다. 머리 위의 선(線) 조형물은 마음의 골조[중심]을 뜻한다.

그림 제목들에도 작가의 인생관이 드러난다. 지난 8월 개인전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풍랑>과 함께 전시한 작품 <꽃을 피우다>에는 배[腹]에서 꽃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그려졌다. 작가는 이에 대해 “사람도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며, 자라고 지고 하는 것 같다”면서 “있는 곳에서 담당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세상을 기뻐하며 사는 방법>,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자족> 같은 그림에는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생각’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달려갈 길2,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14)

작가의 그림에는 초록 숲과 식물이 많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식물을 이렇게 봤다. “식물에는 생명이 있고, 그 힘이 자라는 모양대로 그 모습이 만들어져 간다. 언젠가, 화분에 담긴 지치고 마른 식물을 그리면서, 이 식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화분’에서 나와 울창한 숲에 뿌리박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을 더 들어봤다.

“제 그림은 현실과 비현실을 조합한 상징체계 위에 구축됩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형태나 선·색 등으로 제가 원하는 공간을 재연을 하지요. 대체로 초록색 숲이나 식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화면 속의 초록색은 편안함을 주며 각양각색의 형태, 살아있는 것, 자라난다는 가변성 등의 이유로 그림의 소재로 등장합니다.”


(with all my heart, 16x12cm, 목판화, 2014)

김 작가는, 내년에도 몇 차례 개인전을 구상하고 있다.

당장 우진문화재단이 마련한 청년작가 초대전 전시가 2주간 예정돼 있다. 전시에 대한 작가의 밑그림은 이번에도 ‘공간의 초상’이다. 다만, 최근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구조물들이 이번엔 더 큰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아크릴물감 대신 유화물감으로 색·선·면을 그리는 작업도 생각해보고 있다.

김수진 작가는 전북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이후 7차례 개인전과 각종 초대·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전북판화가협회, 지속과확산, 전북대서양화회, 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