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학년 진학부장을 하면서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고민하는 많은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자기소개서에는 학생의 학업경험, 학창시절 의미 있던 일, 친구들과의 나눔과 배려·협력의 경험 등을 기술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육체적 정신적인 도움을 베풀었던 봉사활동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요즈음은 대학 입시에서 학생들의 인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봉사 활동에 관한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봉사활동 공간이나 시간은 학생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 자기소개서에는 봉사활동에 따른 느낌과 소감을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소감을 접하다 보면, 대부분 친구들은 봉사활동을 무엇인가 ‘혜택을 베푸는 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봉사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속에 자신의 동상만을 세우려고만 하는 학생들의 봉사 활동에 대한 태도를 접할 때마다, ‘역지사지’하는 마음과 함께 『당신들의 천국』을 꼭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사진=1976년 초판본 표지). 단순히 학생들만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학교 현장의 교사들 또한 진정으로 학생들과 얼마나 소통하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음표를 남기면서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소설의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역 대령 조백헌이 소록도의 한센 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천국의 문제는 쟁점이 된다. 그는 나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지렛대를 안겨주고자 애쓰는 의지적 인물이다. 그래서 소록도의 나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일념으로 득량만 매몰공사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의지와 현실 사이에서 정신적인 방황과 갈등 및 현실적 고난을 겪는다. 갈등의 요체는 자신의 순수 의지가 현실적으로 소통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병원의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 원장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인물로 제시된다. 이전의 병원장들이 소록도에 천국을 만든다는 미명 아래 나환자들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동상 세우기에 급급했던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이상욱이다. 이상욱은 조백헌 또한 자신의 명예욕이나 과시욕을 충족하고자 천국을 운운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회의의 시선을 보낸다.
이상욱 뿐 아니라, 환자들을 대변하는 황 장로에 의해서도 제기되는 문제는 다른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수평적인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유로운 의지가 교감되는 가운데 공동체의 일반 의사에 걸맞게 힘이 행사될 때, 비로소 진실하고 정당한 힘의 질서와 윤리가 탄생되고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록도의 천국이 소록도 밖의 천국과 구별될 때, 그것은 결코 '우리들의 천국'이 될 수 없고, 다만 힘을 행사하는 병원장들의 천국, 즉 '당신들의 천국'에 불과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덧붙인다. 자유 의지와 사랑의 교감에 기초한 실천적 힘, 위나 밖으로부터가 아닌 안으로부터의 자생적 의지나 운명에 기초한 천국을 그들은 소망했던 것이다.
추호도 명예나 보답을 바라지 않을 것이며 결코 동상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자기 신념을 밀고 나갔던 조 원장도 이 대목에서는 수그러들고 만다. 오랜 갈등과 번뇌 끝에 조백헌은 스스로 반성하면서 자신이 추진했던 간척지 공사가 일단락되기 직전에 섬을 떠난다.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이제 원장이 아닌 평범한 섬사람으로 소록도에 다시 들어온다. “운명을 같이 하지 않는 한에서의 어떤 힘의 질서는 무서운 힘의 우상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운명을 같이 하려 한 그였지만, 이제 필요한 원장의 권능이 그에게 없었다. 이에 그는 또 다른 한계에 부딪친다. 더 이상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모색하고자 한 조백헌의 반성적 이념과 노력은 소설에서 구체적인 결실을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소중한 불씨 하나를 소설의 대단원 부분에 틔워 놓고 있다.
윤해원(음성 병력자)과 서미연(건강인)이라는 두 미감아 출신의 결혼이 그것이다. 사랑과 자유에 기초한 이 둘의 결혼은 일반 의사에 입각한 공동의 행복 추구의 가능성을 암시하기에 족한 사건이다. 이 결혼에 정성을 들인 조백헌은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의 중간 지점에 이들의 신접살림을 차리게 한다. 나환자와 일반인, 우리와 당신들이 구별되는 천국이 아닌, 서로 스미고 새로이 짜이는 '우리들의 천국'의 씨앗이 거기서 자생적으로 움트기를 열망하면서 말이다. 이런 열망을 지닌 조백헌이, 취재 온 이정태 기자와 다시 섬에 돌아온 이상욱이 몰래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사 연습을 하는 것으로 소설은 대미를 장식한다.
아직도 구성원들 사이에 공동체의 일반 의사에 바탕을 둔 수평적 질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한 이유를 분명하게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한권의 책이기에,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다.
※ <내 마음을 움직인 책>은 전북교육신문 독자가 독자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이어서 다음 책을 소개할 사람을 지목합니다. 첫 출발은 이리고 권혁선 선생님입니다. 다음 책을 소개할 사람은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김소정 선생님입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