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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영전강 집단해고 위기


... 문수현 (2015-01-28 17:49:10)

전북교육청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다시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에는 영어회화전문강사(영전강)들이 심각한 고용 위기에 몰렸다.

전북교육청은 26일 영전강 신규채용 및 재계약 지침을 학교에 내려 보내, 영전강의 주당 책임수업시수 18~22시간 중 정규수업을 최소 15시간 이상 확보한 학교만 강사를 채용할 수 있게 했다.


(전북교육청은 학교가 영어회화전문강사를 채용하기 어렵게 고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26일 일선학교에 시행했다. 강사들은 이 가이드라인이 영전강을 말살하려는 악랄한 수법이라며 분노했다.)

기존에는 정규수업을 최소 12시간으로 하고, 나머지 6~10시간은 정규수업이 아닌 방과후 학교 수업 등으로 채웠다. 그만큼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했던 셈이다.

교육부도 학급 수가 주는 농산어촌의 특수성을 인정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방과후 학교 수업이나 영어과 기초학력미달학생지도 시간을 책임수업시수에 일부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북교육청 방침대로 하면 기존 정규수업 12시간에 방과후 수업을 더해 강사의 책임수업시수를 채웠던 많은 학교들이 올해 채용(재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만큼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영어 정규수업시수를 48시간 확보한 학교의 경우를 예로 들면, 1명당 기준수업시수가 12시간일 때는 교수자(정규교원과 영전강) 4명이 12시수씩 분담해 수업을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수가 15시간 이상으로 바뀌면 교수자3명이 각각 15~16시간을 분담해야 한다. 일자리 하나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리고 물러나야 할 사람은 물론 비정규직 신분인 영전강이다.

도내 140여명의 강사가 모두 영향을 받지만, 가장 큰 타격은 지난 2011년 3월 제3기로 채용된 강사들이 입게 된다. 이들은 해마다 재계약을 거쳐 4년간 한 학교에서 일해 왔지만, 5년차를 맞는 올해에는 시험을 거쳐 신규 모집에 응시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강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3기 강사 52명이 일자리를 유지하려면 학교 문 52개가 열려야 하지만 실제 문이 열릴 학교는 30곳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공문에는 ‘영어정규교사의 적정수업시수를 반드시 확보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규교사의 적정수업시수는 시 지역 18시간, 군 지역 12시간이다. 예년과 다르게 ‘반드시’라는 문구가 새로 포함됐다. 그럴 경우 군 단위 학교뿐 아니라 시 단위 학교에 근무하던 강사들도 피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더욱 불안해하게 된다.

전북교육청 공문이 시행된 26일 이미 몇몇 소규모 학교는 ‘이렇게 되면 우리 학교는 신규채용을 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읍의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7개 학교 중 4개 학교는 15시수를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군 단위 학교에 근무하는 3기 강사 70% 이상이 결국 해고당할 것이라는 게 강사들의 판단이다.


(전북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이 도교육청의 인위적인 감원 방침에 저항해 도교육청 1층 로비에서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전북교육청 방침은 영전강에 대한 적극적이고 인위적인 감원 정책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전북교육청은 한 학교에서 책임수업시수 확보가 어려운 경우 순회 근무도 가능하도록 한 교육부 업무지침도 외면하고 있다. 지난주까지 강사들이 노조를 통해 전북교육청에 '순회 근무'를 포함해 다양한 고용유지 방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교육감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

강사들은 28일 현재 사흘째 전북교육청 1층 로비에 은박지를 깔고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사들은 “전북교육청은 영전강이 없어지게끔 유도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시도교육청은 현재 고용 중인 강사들에 대한 고용안정 차원에서 고민이 많은 반면, 전북교육청은 수업시수를 조정해 학교가 강사를 고용하기 어렵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강사들 사이에선 전북교육청이 영전강 말살정책을 펴고 있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전북교육청은 이미 지난해 전문상담사와 초등스포츠강사 감원 당시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가장 높은 해고율을 보였다. 영어강사들은 “지난해 (2기 강사에 대한) 신규채용에서 해고율이 54%였다”며 “이는 자연감소율이 높은 제주를 빼면 전국 1위”라고 지적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차없이 쳐내는 김승환 교육감과 전북교육청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강사들에 따르면 모든 시도교육청 소속 영전강들이 고용 위기에 놓여있지만 특히 전북, 전남, 광주교육청 소속 강사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교사의 신분방어에 활동의 초점을 둬온 전교조의 조합주의가 이들 지역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 악화시킨다고 보고 있다.

영전강은 초등학교 영어 수업시수와 중등학교 수준별 수업이 확대됨에 따라 추가되는 수업을 정규교원과 분담하기 위해 2009년에 도입됐다. 전북에서는 2009~2011년 3기에 걸쳐 235명이 학교에서 일하다가 100명 가까이 줄어 현재 140여명이 일하고 있다.

농성 중인 한 강사는 “도교육청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저버리고 있다”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가 불합리하고 정규교사 노선하고 다른 건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제도를 활용해 이왕 고용한 사람들의 일자리는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거대한 공공기관을 믿고 응시해서 들어온 우리를 나쁜 사람처럼 몰아가고 쓰레기처럼 버리려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지난 2009년 교육감선거 출마 당시 영전강에게 “당선되면 고용안정”을 약속했다가 당선 얼마 뒤엔 “시행령에 묶여 어쩔 수 없다”고 태도를 바꾼 바 있다.

한편 올해 영전강 신규채용은 2월 2~6일 서류접수, 11일 수업실연과 면접 등 2차 시험 순으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