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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요정 나라에서 온 손님


... ( 편집부 ) (2015-02-15 22: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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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줘야 할까? 난 동심은 오랫동안 간직할수록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꿈을 꾸더라도 좀 더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의심을 품을 때마다 동화 나라를 위한 동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엄마, 정말 피터 팬이 하늘을 날아다녀요? 후크 선장도 있고?”
“그럼, 당연히 있지. 피터 팬은 요정들이 사는 마을에서 아직도 살고 있지. 웬디랑 존이랑 마이클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네버랜드라는 요정 마을로 놀러 가잖아!”
“엄마, 엄마 그럼 우리도 갈 수 있어? 요정 마을.”
“태훈이가 착한 마음으로 약한 사람 도와주고, 후크선장처럼 나쁜 사람한테 용기를 내서 싸울 수 있는 마음이 되면 피터 팬이 놀러 와 주지 않을까?”
“엄마 우리 집은 창문이 넓어서 피터 팬이 들어오기 좋겠다. 그지 엄마?”
“이제 꿈나라로 피터 팬을 만나러 갈까? 9시가 넘었네? 9시면?”
“자야 되요!”
아이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지만 내가 뒤돌아서면 금세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에게 동화는 꿈의 세계였다. 그러나 가끔 현실의 세계가 되어 피터 팬이 되고, 웬디가 되고 마이클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방금 읽었던 동화의 주인공이 되어 하늘을 날고 괴물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분주했다. 딱히 종교를 갖지 않은 무교이지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들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양말을 걸어 놓았다. 5살 된 태훈이는 쌀을 다 먹고 한쪽에 접어둔 쌀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큰 자루는 뭐하려고?”
“양말은 너무 작아서 장난감 로봇이 안 들어갈 거 같아. 그래서 이거 걸어 두려고.”
“태훈이는 올해 착한 일 많이 해서 산타할아버지가 로봇 장난감 사주실 것 같아?”
“응! 우는 것도 조금밖에 안 했고. 어린이집에서 아가 때리는 형아도 내가 때려줬고, 그리고…. 엄마 말도 잘 들었어!”
“그랬구나, 산타할아버지가 장난감 로봇 선물하시겠네? 그런데 있잖아? 산타할아버지는 요정 나라에 사시잖아. 그래서 태훈이가 조그만 양말을 걸어 두어도 태훈이만큼 큰 선물도 넣어 두시는 걸?”
“정말?”
“그럼, 당연하지.”
아이는 쌀자루를 제자리에 던져두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문을 한 번 쳐다보더니 창문 앞에 다가가서 낑낑거렸다. 제 키보다 높이 있는 창문을 열어보려는 것 같았다. 밖은 언제부터인가 하얀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왜 태훈이?”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굴뚝으로 들어오시잖아요. 우리 집은 굴뚝이 없잖아? 그래서 못 찾으면 어떡해?”
“대신 창문이 너무너무 넓잖아. 더 편하게 들어오실 수 있지?”
“그럼 창문 열어두면 안 돼?”
“태훈이 감기 걸려서 안 돼요!”
아이는 그래도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방안의 모든 불을 껐다.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작은 조명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는 몇 번인가 뒤척이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한참 지켜보던 나는 그때야 조심조심 아래층에 있는 문방구로 내려갔다.
“아줌마! 제가 주문한 것 왔어요?”
“응, 낮에 왔어. 가지고 올라갈까 하다가 애들이 깨어있는 것 같아서 안 올라갔는데 문 닫으려다가 자영이 엄마 기다리느라고 문 못 닫았어!”
“죄송해요. 작은애가 잠을 못 자고 자꾸 일어나서요.”
“그래서 기다린 거야. 아무래도 그러는 것 같아서. 자영이는 바비인형 새로 나온 거 맞지? 태훈이는 장난감 로봇이구.”
“네!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혹시 깨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손에는 포장지와 함께 산타 모양을 한 카드,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잡다한 장난감이 더 들려있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선물포장을 했다. 될 수 있으면 엄마가 사 줬다는 표시를 내지 않기 위해서 상표든 뭐든 다 떼어내고 포장지도 산타의 선물 보따리가 그려진 것으로만 사용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주는 선물은 따로 준비해줬다. 그래야 산타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믿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해 년마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고, 피터 팬이 창문 앞에 와서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렸다. 집 안쪽에 있는 벽장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한 나라 엘리스가 만났다는 토끼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벽장 안을 좋아했다. 시계를 들고 있는 토끼가 깡충거리며 아이들 앞에 나타나면 따라가겠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정말 벽장을 열면 깡통 로봇이 튀어나오고 심장을 찾는 허수아비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동화 나라를 꿈꾸고 있었다. 아이들이 벽장을 무서워하기에 들려주었던 동화 속 동화가 아이들의 동심도 키우고 나의 판타지적 기질도 키우고 있었다. 그 집에서 9년을 살고 아파트로 이사했다.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다. 아들은 씩씩거리며 신발을 휙 벗어 던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고 씩씩거리며 잔뜩 화난 표정으로 날 째려봤다.
“왜? 엄마가 뭐 잘못했어?”
“엄마 거짓말했지? 나한테는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엄마가 무슨 거짓말을 했을까?”
“산타할아버지는 없잖아? 피터 팬도 그냥 동화책에만 있는 것이고!”
“아니야. 누가 그래?”
“유치원 친구들이 그랬어! 선물도 엄마, 아빠가 주는 거라고!”
“어이쿠! 어떤 친구일까? 벌써 요정의 나라를 잊어버렸구나? 요정 나라가 마음에 있는 친구들만 피터 팬도 만날 수 있고, 산타할아버지도 볼 수 있는데!”
“아니야. 그건 엄마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했어!”
“아닌데? 정말 요정 마을은 있어. 태훈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동화 나라에 있던 친구들이 태훈이에게 올 수 있는데.”
“아니야! 엄마 거짓말이야!”
그때 마침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심각하게 나와 아들과의 대화를 듣던 딸아이도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줄 수 있을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청소하는 척하며 그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방법이었다. 딸아이는 무엇인가 안다는 듯 씽긋 웃으며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엄마, 이제 우리 다 자랐어요. 안 속아요!”
“진짜인데, 아 방법이 없네. 엄만 슬퍼. 벌써 우리 태훈이랑 자영이가 요정 마을을 마음속에서 지우는 것 같아서. 너무 슬퍼. 웬디도 다 컸지만, 동화 나라를 무척 좋아했잖아. 그래서 피터 팬도 만났고.”
“그건 동화잖아 엄마!”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혹시 아이들과 서울 올라올 기회가 있으면 연극을 보러 오라는 친구의 초대장이었다. 초대권도 들어있었지만, 연말에 아이들과 서울행 기차를 탄다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이었다. 혹시 연극을 하는 그 친구라면 내 거짓말을 빨리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전화로 하려다가 그 친구가 누군지 모를까 봐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그 친구전화 번호를 누르고 받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오랜만에 전화했네? 서울 왔어?”
“우와~! 산타할아버지 맞으시죠? 전화 연결 안 될 줄 알았는데! 저 자영이 엄마인데요. 이번에 태훈이 선물은…. 아, 태훈이 이름이 자꾸 희미해지고 있다고요? 아이가 벌써 동심을 잃어버렸을까요? 아니에요. 태훈이랑 자영이는 산타할아버지 계시다는 것 믿어요.”
친구는 나의 몇 마디 말로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었다. 친구가 준비된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대충 들을 수 있었다.
“허허허 우리 자영이구나! 올해 착한 일 많이 했지? 동생도 잘 보살피고! 공부도 잘하고. 백 점도 많이 맞았지? 우리 자영이는 올해는 커다란 피카츄를 가지고 싶다고 소원 빌었지?”
“네, 산타할아버지 맞아요? 엄마도 내가 피카츄 갖고 싶어하는 거 모르는데?”
나는 속으로 웃었다. 일기장을 엄마가 보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전화는 태훈이에게도 이어졌다. 아이는 신기한 듯 휴대전화를 몇 번 바라보다가 다시 귀에 가져다 대며 정말 믿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아이들이 들떠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든다며 벽장 안에서 재료들을 꺼낼 때 친구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 친구와 가끔 아이들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때 나는 PC 통신에 글을 연재하고 있었고 작가와 팬으로 만났었다.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지만, 친구로 지내고 있는 터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동심은 지켜줘야 한다며 아이들 동심에 무심한 나를 나무랐던 친구였다. 그랬기에 아이들에게 쉬이 산타할아버지 흉내를 내 주었다. 그 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는 요정 나라가 점점 자라고 있었다.
“엄마, 요정 나라에 가 본적 있어요?”
“아니, 엄마는 너무 일찍 요정 나라를 잊어버렸어. 그래서 가보지 못했지?”
“요정 나라 가면 정말 피터 팬도 있고, 마녀도 있어요? 바쁘다, 바빠하며 뛰어다니는 토끼도 있어요?”
“동화 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모두 다 있지. 우리가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이지? 그리고 일본도 있지? 미국도 있지? 요정 나라에도 그렇게 마을이 있어. 팅거벨이랑 피터 팬이 사는 마을이 따로 있고, 일곱 난쟁이가 사는 마을도 있고, 산타할아버지가 사는 마을도 따로 있지”
“엄마, 나 산타할아버지한테 또 전화해볼래요!”
“산타할아버지는 너무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그런데 태훈이 이름이 자꾸 희미해지니까. 궁금하셔서 받으신 거야!”
“산타할아버지 안 믿으면 이름이 희미해져?”
“응! 마음속에 산타할아버지를 믿고 있으면 이름이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태훈이는 착한 일 많이 하고 있어요. 하고 보이는 것이고, 에이 산타할아버지 없어. 하면 희미해졌다가 태훈이 이름이 사라지지. 그래서 다음 크리스마스에 태훈이 이름이 없으니까 착한 일 많이 해도 모르시게 되는 거야!”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며 난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거짓말을 해도 너무 심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딸아이는 벌써 아홉 살. 이제 서서히 동화 나라에 대한 환상이 깨질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켜주고 싶을 때까지는 지켜주고 싶었다. 아들이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 우리 아파트로 이사 왔잖아요?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 모르면 어떡해?”
“태훈이가 어디에 있는지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지. 주소를 보고 찾아오는 게 아니라 태훈이의 착한 마음에는 색깔이 있거든. 그 색깔을 따라 찾아오시는 거야.”
“엄마 아파트도 굴뚝 없는데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세요? 우리 집은 도둑 못 들어오게 다 막아놨잖아요!”
“산타할아버지는 도둑이 아니라서 좁은 틈으로도 다 들어오실 수 있지! 요정 나라에서 오시는 분이잖아!”
아이는 다시 안심한 듯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아이들의 동심은 무사히 지켜줄 수 있었다. 조금은 심한 거짓말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여전히 동화의 나라를 꿈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방학식하고 일찍 돌아온 아이는 울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거실에 휙 던지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 꼼짝하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나 있는 것 같았다. 조용히 딸아이 방문을 열었다.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자영이 왜 화났어? 울었어?”
“엄마, 산타할아버지 있지? 그렇지? 거짓말 아니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친구들과 산타할아버지가 있다, 없다는 것으로 한바탕 했음이 분명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제는 사실을 말해야 할 때가 된 듯했다.
“그러니까. 그게….”
“산타할아버지랑 통화도 했잖아?”
“자영이는 지금 뭐 찾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영어로 사인해 주고 나한테 편지 써 준 것. 아빠 글씨도 아니고 엄마 글씨도 아니었잖아!”
“자영아! 이제 자영이 열한 살이지? 이제 열두 살 되잖아?”
“응!”
“자영이가 언제까지나 동화 나라 친구들과 함께했으면 했는데.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아. 사실은 엄마가 모두 꾸며낸 이야기야!”
“그럼 산타할아버지 없는 거야? 친구들 말이 맞은 거야?”
“…. 응!”
“엄마, 너무해. 나 지금 완전히 바보 됐잖아. 친구들이 나보고 바보라고. 아직도 산타할아버지 믿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유치원생이냐고. 그래서 아니라고 산타할아버지는 있다고 했단 말이야. 피터 팬도, 마녀도, 후크선장도 모두 요정 마을에서 정말 산다고 했는데! 그리고 산타할아버지랑 전화통화도 했다고 했더니 나보고 거짓말쟁이라고 했단 말이야!”
아이의 대성통곡이 시작되었다. 창피한 모양이었다. 우는 아이를 안아주려 했지만 아이는 엄마에게 당한 배신감이 더 큰 모양이다. 거부했다. 그리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밤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밤새 울었던 모양이다. 아침이 되어서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방문까지 잠그는 시위를 시작했다.


( 그림 = 임솔빈 )

아침이 지나고 점심 무렵이었다.
자영이 친구 몇 명이 밖에서 자영이를 불렀다. 같은 아파트 사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과 음료수 과자를 거실에 내어 주고 함께 앉았다. 자영이는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제 자영이랑 싸운 친구 있어?”
“우리랑 말다툼했는데요. 자영이가 산타할아버지랑 전화통화 했데요. 없잖아요! 거짓말이잖아요?”
“왜 산타할아버지가 없을까?”
“엄마가 그랬어요. 선물은 엄마, 아빠가 사다가 몰래 놔 주는 것이라고.”
“친구는 언제까지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어?”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거짓말인 것 알았어요!”
“다른 친구들도?”
“네!”
“어른의 세계에는 이미 동화 나라가 없지. 그러니 어른인 엄마에게 피터 팬은 거짓말로 꾸며낸 동화겠지? 그럼 우리 친구들 마음속에 피터 팬은 있을까? 마녀는? 이상한 나라 엘리스는? 동화에서 많이 나오는 요정은 진짜 가짜야? 없어?”
“없어요! 그것은 동화예요.”
“그래? 근데 어릴 땐 요정이 있을 거라 믿었지? 그렇지?”
“아기 때였으니까”
“아니야, 그땐 동화 나라의 세상이 너희 마음에서 살아 있었으니까. 실제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줌마는 아직도 요정은 있다고 생각해. 동화 나라를 믿으면 그 요정은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있잖아. 그렇지? 동화책 읽고 나서 비슷한 꿈을 꾼 적 없어??”
“저 얼마 전에 동화책 읽고 꿈꿨는데요. 고양이가 저에게 말을 했어요.”
“거봐. 우리 친구 마음에 아직 요정 나라가 있네? 난 그걸 자영이한테 요정 나라라고 했거든? 요정 나라는 동화 나라의 친구들이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곳.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
“몰라요.”
“친구들의 마음속. 친구들은 동화 나라 요정을 잊어버리고 있지만, 자영이의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동화 나라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거든. 근데 친구들은 동화 싫어해?”
“좋아해요!”
“전 동화보다 만화영화가 더 좋아요!”
“그럼 동화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읽는 동안에는 정말 동화 나라 친구들이 정말 있는 것 같지 않아? 내가 주인공이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저도 그 동화 속 주인공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친구가 숲 속의 마녀라는 동화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 전화해서 구해주세요. 숲 속의 마녀가 절 잡아먹으려고 해요. 하면 거짓말이라고 그냥 끊어버릴 거야?”
“아…니…요!”
“그렇지? 자영이는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동화 나라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래서 누군가 산타할아버지라고 전화를 했고, 자영이 마음속에는 아직 산타할아버지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네….”
아이들은 나의 이야기에 혼돈이 오는 것 같았다. 맞은 말 같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한 아리송한 이야기에 몇 번이나 나를 바라보았다. 의심의 눈초리였다. 하지만 마음속의 동화 나라에 대해서는 조금은 인정하는 듯했다.
자영이가 방문을 열고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언제 울었었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내 옆에 앉더니 엊그제 읽었던 동화 이야기에 신이 나 있었다. 딸아이 방으로 친구들이 모두 들어갔다. 딸아이는 그동안 받았던 산타할아버지의 선물과 편지. 내가 들려준 산타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니네 엄마 동화 쓰는 사람이야?”
“아니, 소설 써!”
“그래서 너한테 동화 나라가 있다고 하나보다. 근데 이건 뭐야?”
“그거? 작년에 받은 것!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들고 왔어!”
“아니야, 그거 분명 아빠 친구나 다른 사람일 거야!”
“맞아, 엄마가 또 친구한테 부탁했을 거야.”
딸아이의 동화 세상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조금 늦게까지 동화 나라의 진실을 믿으며 요정 나라에서 온 손님 산타할아버지를 손꼽아 기다리던 열한 살짜리 동심은 그렇게 서서히 어른의 세상으로 발디딤을 시작했다.

가끔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요정이 사는 마을은 정말 없을까?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환상의 나라를 안고 산다. 시간 여행에 관한 영화를 본다거나 소설을 읽을 때, 그런 이야기가 실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세상에는 동화 나라가 있고, 어른들의 세상에는 판타지가 있다. 누구나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환상은 가지고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버거운 삶도 가끔 쉬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며칠 전 딸아이에게 메시지가 왔었다.
“나 책 사다가 엄마가 좋아할 만한 책이 있어서 집으로 배달시켰어. 엄마 심리 서적 좋아하잖아. 심리학 입문으로 괜찮은 책이야. 꼭 읽어봐.”
아이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 판타지, 심리, 시간 여행에 관한 책뿐만 아니라 온라인 웹툰, 온라인 연재소설, 연재만화 등을 보고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분야는 소개하거나 온라인 링크 주소를 보내온다. 그리고 딸과 만나면 수다스럽게 요정 나라로 여행을 시작한다. 둘에게는 아직 동심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