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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엄마는 수다쟁이


... ( 편집부 ) (2015-03-02 09: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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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며 호기심이 생기는 때가 기억을 더듬어보면 세 살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 대화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면 억지일까?
“엄마, 뭐야?”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부터 대화의 시작이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모든 것을 답해주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하루 종일 대답만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똑같은 질문을 매일 반복한다. 매일 똑같은 답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될 수 있으면 아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은 하지만,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반복되는 답변이 자연스럽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익히게 되고 용도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와 대화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엄마, 대학은 왜 가야 해요?”
여섯 살짜리 딸아이가 물었다. 읽던 책을 덮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이었다. 난 딸아이와 마주 앉았다.
“왜? 대학이라는 곳이 궁금해?”
“아니,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잖아. 그런데 왜 꼭 가야 하는지 몰라서 그래.”
“대학은 자영이가 이다음에 꿈이 생기면 그 꿈을 더 빨리 이룰 수 있는 곳이야.”
“꿈?”
“그러니까 자영이가 이다음에 되고 싶은 것 있잖아. 우리 자영이 선생님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선생님 될 수 있을까? 공부를 많이 해야겠지? 그런데 그냥 공부만 해서 선생님 될 수 있을까?”
“그럼?”
“대학이라는 곳은 아주, 아주 많은 여러 가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야.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으면 법대를 가야 하고 선생님 되려면 교육대학교에 가야 해. 그리고 임용 고시라고 해서 선생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을 봐야 해.”
“그럼 대학교에서 선생님 되는 방법을 가르쳐줘?”
“음, 어찌 보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럼 대학교 가서 공부하면 다 선생님 돼?”
“아니, 선생님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만 선생님 될 수 있지?”
“그럼 선생님 말고 의사 선생님 되려면 대학교 가야 해?”
“당연하지.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을 가서 6년 동안 공부를 해야 되고 또 병원에서 실습도 하고 그래야 의사가 될 수 있어.”
“그럼, 엄마처럼 글 쓰는 사람도 대학교 가?”
“그건 꼭 그렇지는 않아. 글 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쓸 수 있지. 그런데 대학교에서 글 쓰는 것을 가르쳐 주는 학과가 있어서 그곳에서 배우면 좀 더 잘 쓸 수 있겠지?”
“그럼 엄마, 대학을 안 가면 돈도 못 벌어?”
“아니, 그건 아니야. 만약 자영이가 하고 싶은 일이 대학을 다닐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상관없겠지? 옆집에 미장원 오빠 있잖아. 그 오빠는 대학에서 머리카락 자르는 것을 배우지는 않았어. 학원에 다녀서 자격증을 딴 거야”
“그럼 엄마….”
아이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꼬리를 물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까지 저녁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딸아이와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대화라고는 할 수 없었다. 딸아이의 일방적인 질문에 나의 대답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섯 살짜리 아이가 다른 것은 까맣게 잊은 채 3시간 동안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집중력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딸아이는 답변을 해주면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물론 중간에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미장원 오빠는 왜 대학에 안 갔어?”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난 미장원 사내가 대학을 다녔는지, 무슨 학과를 졸업했는지, 어느 학원에 다녔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잘 모르겠어. 안 물어봤거든. 그런데 아는 것은 있지. 그 미장원 오빠는 우리 자영이 머리 참 예쁘게 잘라 주잖아. 그 오빠가 대학을 다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상관없을 거야. 왜냐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 자영이 머리도 예쁘게 잘라 주니까.”
“그럼 꼭 대학은 안 가도 돼?”
“무조건 대학을 가는 것은 엄마는 반대거든. 요즘 언니, 오빠들 보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수학능력시험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지원하잖아? 우리 자영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해. 자영이는 꿈을 일찍 찾아서 그 꿈을 향해 노력했으면 좋겠어. 그 꿈이 미장원 오빠나 미장원에서 피부 마사지해주는 언니처럼 학원에 다녀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꼭 대학에 가서 시간 낭비 할 필요는 없는 거야.”

아이가 질문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하지만, 엄마의 관심을 끌고 엄마와 함께 놀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 많은 설명을 했었다. 아이가 모두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 뒤로도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는 질문부터 어른이 생각지 못했던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라 생각이 되었다.

엄마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어느 날 질문에
“엄마, 슈퍼마켓 아줌마는 왜 장사해? 공부 못했어?”
“아줌마가 왜 장사를 시작했는지는 엄마도 모르지. 자영아, 있잖아? 공부를 정말 잘해도 어떤 순간의 선택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도 해. 자영이가 아직 어려서 이해 못 하겠지만, 공부 잘해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공부 못 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 물론 공부 잘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지.”
“엄마, 나는 공부 잘하고 행복한 사람 될래!”

아이와 대화는 매번 주제가 바뀌었지만, 형태는 같았다. 언제나 딸아이는 질문하고 나는 답변했다.
‘아이와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언제쯤일까?’
난 그 궁금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이와 대화는 이미 아이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답하고 질문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궁금한 것은 먼저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다시 물어보는 것 자체가 대화라는 것을 작은 아이의 투정에서 깨닫게 되었다.
“엄마, 누나랑 대화가 너무 길어. 나하고 이야기할 때는 몇 분 안 하면서 누나랑 이야기만 시작하면 깜깜한 밤까지 하고…. 나랑은 이야기만 하고 누나랑은 대화하는 거잖아.”
“어? 그건 아니지. 태훈이 네가 항상 대화하다가 친구들이랑 놀기로 했다면서 밖에 나가거나 재미없다고 다른 것 했잖아! 누나는 엄마랑 이야기 시작하면 항상 대화에만 집중하니까.”
대화였다. 나는 아이에게 답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에게는 대화였고 엄마와 함께 노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대화하는 법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딸아이가 질문이 아닌 대화를 처음 요청한 것은 남자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였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중간고사 기간이었기에 일찍 들어온 딸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작업실로 들어왔다.
“엄마, 잠깐 이야기해도 돼? 바빠?”
“아니, 하던 일 저장만 하면 돼. 1분만 기다려 줘.”
유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는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과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방에서 나가려는 기색이 보였다.
“괜찮아. 급한 일 아니야.”
“엄마, 나도 급한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 하던 일 끝나고 이야기해도 돼!”
“저장 다 했어. 우리 식탁에서 간식 먹으면서 할까? 엄마 간식 준비하는 동안 이야기 시작해도 되잖아?”
딸아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초등학교 때 사귀던 남자 친구들은 장난 같았는데 지금은 왠지 설렘도 있고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좋은 거지 왜?”
“설렘도 있고 또 오빠가 잘해주니까 좋긴 해. 그런데 엄마, 나는 모범생은 아닌데 그래도 내 기준은 있거든. 엄마가 항상 말하잖아. 공부할 때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고 놀 때는 노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잖아. 내 기준도 그렇거든.”
“그런데?”
“이 오빠가 싫지는 않아. 그런데 지금 시험 기간이잖아. 그래서 일찍 끝나서 노래방 가는 아이들도 있긴 해. 내 친구들도 많아. 그런데 난 그게 좀 싫거든. 시험 끝나는 날 가자고 했는데….”
“남자 친구가 싫다고 해?”
“아니, 알았다고 하는데…. 다른 여자애들이랑 간 것 같아서 신경이 쓰여.”
“많이 좋아하는구나?”
“나도 모르겠어. 지금 더 정들기 전에 헤어질까 생각 중이야.”
“왜? 중간고사 3일 보잖아? 그럼 마지막 날 놀러 가는 것으로 대화를 해봐!”
“대화가 필요 없는 것 같아.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해야 된대. 그리고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 싫고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 좀 짜증 나. 그리고 시험 볼 때마다 이런 것으로 싸워야 하잖아.”
“그래도 좀 합의점을 찾아봐.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야. 그 친구가 너와 사귀게 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인 거야. 우린 쉽게 우연히 만났다고 하지만 모든 인연은 우연이라는 것이 없어.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이지. 같은 학년도 아닌데 그 친구가 왜 자영이를 보게 되었을까? 왜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분식집에서 만나게 됐을까? 그리고 자영이는 왜 그 친구가 좋은 느낌이었을까? 우리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필연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엄마, 그런 것 아닐까? 얼굴 잘생겼고 잘 나가는 남자애라고 해도 너와 인연이 아니면 답답하고 싫은 거다.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필연! 히히.”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런데 무엇보다 엄마는 자영이가 사람의 인연을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떤 인연이든 헤어짐이 아름다운 인연이어야 해. 언제 어느 때 다시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거든.”
“응, 엄마. 그냥 헤어지는 것으로 결정할래. 대신 무조건 헤어지거나 하지는 않을게. 엄마 이제 일 해. 공부는 하기 싫고 나도 낙서나 좀 할래.”

딸아이는 중간고사 끝나던 날 그 친구와 노래방에 갔다. 가끔 그 친구 도시락을 싸가기도 했지만, 전처럼 들떠 있다거나 설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늦는 날도 별로 없었고 주말에도 그다지 자주 나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흐지부지 인연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가끔 그 친구 소식을 전해주었다. 무난하게 성장해가는 것에 조금은 흐뭇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 임솔빈)

딸아이는 엄마와 대화를 즐겼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내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책가방을 짊어진 채 작업실로 들어왔다. 매일 신기한 것이 많았고 매일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 무렵 난 웹디자인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대신 모든 것을 메일과 전화로 해결했다.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될 수 있으면 집을 비우지 않은 이유는 아이들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의무처럼 작업실에 들어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대화의 끈을 아이들도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특히 말이 그다지 많지 않은 아들도 학교가 끝나면 일단 작업실로 들어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몇 마디 던지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하지만 아들은 중요한 일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서야 알게 되었다. 딸아이는 엄마가 모든 것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은 엄마와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미리 선을 긋는다는 것을 딸아이에게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은 매일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하거나 농구시합을 했다. 그리고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들어오곤 했다. 식탁에서 아들은 운동했던 이야기를 하며 들떠있었다. 아들은 아빠와 대화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 오늘 제가 친구들하고 축구시합 하다가 세 골이나 넣었어요.”
남편의 대답은 항상 단답형이었다.
“잘했네. 운동만 많이 하는 것 같아. 가끔 책도 좀 봐.”
“네.”
아들은 입을 다물었다. 딸아이가 내 옆구리를 툭 찔렀다.
“아들. 그래서 친구들이 좋아했어? 상대편에서는 태훈이가 밉겠다. 오늘도 아이스크림 내기야?”
“응, 아이스크림 내기했어. 근데 나랑 편 먹으면 항상 이긴다고 다 좋아해. 싫어하지는 않아. 그리고 내가 조금 약한 것이 농구잖아. 농구시합 할 때는 애들이 못한다고 놀리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잘하는 것이 있으면 못 하는 것도 있는 거라고 엄마가 했던 말 애들한테 해주고 그래.”
“태훈이 가끔 엄마가 밉겠다. 축구선수 한다는 것 반대해서.”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야. 지금도 축구선수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지.”
그렇게 대화는 밥 먹는 동안 이어졌고 아들은 오늘 시합에서 자신이 영웅이었다면서 전반전, 후반전 나누어서 세 골 넣은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다. 남편은 아이가 말하는 중간에 안방으로 들어가 TV를 켰다. 아이들이 잠든 후 남편은 한 시간 동안 벌서듯 앉아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화법에 익숙하지 못한 남편이었다.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텅 빈 집이 스산하다.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엄마를 부를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벌써 모두 성인이 되어 자기 일을 찾아가는 지금. 난 여전히 대화가 그립다. 여전히 뭐든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만, 이제 작은 일에 엄마를 찾는 일은 없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앉아있으려니 가슴팍에 다가오는 베란다 공기가 차갑다. 시린 만큼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리운 시간. 벨이 울린다.
“엄마, 일해?”
“아니, 그냥 있어. 오늘은 딸이 보고 싶네?”
“나도 엄마 보고 싶어. 그래서 생각 중인데 나 서울 생활 접을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인데? 정직원 계약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분명 내가 해보고 싶은 광고 일인데 일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일도 아니고 서울에서 혼자 있는 것도 좀 많이 외로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도 알게 되고 친해지고 그러리라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그냥 이익과 손실 때문에 만나고 떠나는 사람들이잖아. 살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서울 생활이 무서워졌어.”
“사회생활이 쉽지는 않아. 더군다나 초년생이잖아. 모든 것을 한 번에 적응하면 프로지. 일단 너의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겠지만, 엄마 생각은 네가 서울에서 조금 더 생활해 보면 어떨까?”
“엄마, 이번 주말에 내려갈까 생각 중인데 그때 엄마 시간 비워 놔. 엄마랑 대화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엄마, 국장이 부른다. 주말에 봐.”
딸아이의 전화는 끊어졌다. 공허한 마음이 나와 비슷하다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분명 딸아이는 이야기가 아닌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업무에 관한 이야기. 가벼운 인사가 아닌 마음속에 있는 절실한 이야기. 마음 따뜻해지는 대화가 그리운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엄마, 진짜 엄마는 여섯 살짜리가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 할 거로 생각했었어? 그런데 엄마 그거 알아? 내가 이해를 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대학은 내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 참 신기하지?”
컴퓨터 파일로 저장된 수필을 읽던 딸아이의 물음이었다. 아이들 육아 일기 대신해서 썼던 수필이다. 아이들이 자라면 들려주고 싶은 아이들 이야기를 그때그때 수필로 썼었다. 중간에 하드웨어가 벼락을 맞는 바람에 대부분 손실되고 복구 작업으로 살릴 수 있었던 몇 편만 남아 있었다.
“그건 너 시집갈 때, 문집으로 만들어서 줄 테니까 닫는 것이 좋을 거야! 그리고 네가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만 물었던 것은 아니야. 거의 매일이었어. 매일 질문은 달랐지만, 항상 시작은 똑같았어.”
“엄마, 대학은 왜 가요?”
“응!”
딸아이는 부엌으로 가더니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본격적인 대화 준비였다. 그렇게 딸아이와 밤새 수다를 떨며 깔깔거렸고 직장 이야기에서 시작한 대화는 남자친구 이야기에서 결혼까지 이어졌다. 밤은 아침을 향해 달리고 딸아이와 밤새 떠는 수다는 가슴 속에 따뜻한 별이 되어 총총 빛나고 있었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