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은애)
세상 사람들이 보통 아름다움과 미덕을 말할 때 패륜과 악덕을 말한다는 것이 참 불편한 일인 줄 알기에 시작부터 미안하지만 그래서 더욱 큰 울림으로 내게 남은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300여명의 부모가 자식들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존속 살해 사례연구의 대가인 하이드 교수가 쓴 <왜 아이들은 부모를 살해하는가>에서 보면 가해자들의 90%는 부모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한 사람이어서 이들의 영어명칭을 APO(Abused Parricide Offender: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가해자)라고 약칭했다.
우리나라도 2001년 당시 안양교도소에만 해도 10여명의 존속 살해 재소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2000년 5월 명문 사립대에 다니는 이 모 군은 자기 부모를 토막 살해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은 사건 발생 후 이 군의 형이 세간의 예상과 달리 동생을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한다”고 말한 것에 주목하여 당시 저자인 심리학자 이훈구 교수가 아동학대임을 예상하고 이 군과 주변사람들을 면담하여 심리분석을 한 글이다.
결론은 예상대로였다. 부유하고 명문대를 나왔지만 히스테릭한 엄마와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대령출신이지만 무심하고 냉정한 아버지 사이에서 어린 시절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당하고 나아가 학교와 군대에서 왕따를 당하기까지 이르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던 이 군은 아동학대의 희생양으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였다.
저자는 이 군이 부모로부터 어떤 학대를 당했고, 그럴 때 어떻게 느꼈으며, 그게 성장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범행으로 이어지게 됐는지를 파악하고 이 군의 심리변화 과정을 소상히 기록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이 군이 경찰에서 한 진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범행 열흘 전 엄마에게 난생 처음으로 반항했다고 한다. 그때 자신에 대한 학대를 따져 물으며 네 시간이나 언쟁을 벌였는데, 엄마는 기억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이제와 힐난한다며 이군을 비난하고 부부 사이도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까지 말하여 합세해서 꾸중을 심하게 한다. 결국 이 군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모든 걸 놓게 되는데, 이 군은 “그때 엄마가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잊었을 것”이라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이훈구 지음, 이야기출판사, 2001.)
온순하고 내성적인 아들을 사회에서 죽음과 같은 왕따로 내몬 건 가장 가깝고 보호해줘야 할 부모의 멸시와 모욕이었고, 기어이 존속살해의 충동으로까지 가게 된 건 끝내 하지 않은 “미안하다”는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였다.
요즘은 독친(독이 되는 부모)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지만 옛날엔 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입문교재인 동몽선습에서부터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서로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천륜이든 인륜이든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 책임과 의무를 지키려 힘쓰는 것이 도리이지 일방적인 힘으로 윤리와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의 결과는 섭섭함과 원망이다. 부모니까 당연한 훈육이라고 생각하여 혹은 아무리 잘못해도 부모는 부모니까 라고 생각하여 각자의 마음에 감당하지도 못하고 해결되지도 않을 상처와 분노를 쌓아가며 살아가는 관계들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있다면 단 한번이라도 진심어린 사과의 표현을 해보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주며 크고 작게 쌓인 섭섭함과 원망을 돌이킬 기회가 되지 않을까?
(현재 이 책은 유족의 뜻으로 인해 절판되었는데 도서관 또는 중고서점에서 간혹 볼 수 있다.)
※ 전북교육신문은 매주 금요일 [내 마음을 움직인 책]을 싣습니다. 이번 주 글쓴이가 다음 주에 책을 소개할 사람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이어갑니다. 다음 주에 책을 소개할 사람은 군산 영광여고 1학년 윤세민 학생입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