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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다


... ( 편집부 ) (2015-03-20 09: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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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을 움직인 책 = 『방관자』, 제임스 프렐러 지음, 김상우 옮김, 미래인 2012.

(사진=김수련)

꿈이 작가인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그 가운데 아직 이 책보다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은 없었다. 바로 『방관자』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사실 조금 특별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날은 그 아이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학생부실로 불려간 날이었다. 얼마 뒤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이 책을 읽어라’라는 말과 함께 종례를 마쳤다. 사실 그때는 이 사건과 관련 없는 우리가 왜 굳이 돈으로 책까지 사서 읽어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짜증도 났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비로소 선생님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주인공인 에릭이 미국 오하이오에서 롱아일랜드로 이사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사 온 에릭이 처음 만난 사람은 케첩 범벅인 채로 도망치는 할렌백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이 그리핀과 메리였다. 할렌백과 그리핀은 확실히 다른 두 아이였다. 할렌백은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는 아이였고 그리핀은 그 괴롭힘의 주동자였다. 걱정 가득했던 에릭의 전학 새 학기 첫날은 그리핀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밥도 같이 먹었고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함께 어울리며 에릭은 할렌백을 괴롭히는 그리핀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외면하던 에릭은 메리와 가까워지며 메리에게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에릭은 할렌백을 도우려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돌아온 것은 할렌백의 배신이었고 에릭은 도리어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이제 희생양은 할렌백에서 에릭이 된 것이다.

이 책은 방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도움을 주려다 도리어 피해자가 되어버린 에릭이 그 시련을 이겨나간다는 매우 전형적인 청소년 소설이었다. 하지만 학교폭력이 대두되고 있던 그 시기에 매우 적절한 책이었고 또한 반 사건 때문에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책이었다.

책 속에서 그리핀은 이렇게 말한다. “할렌백 같은 애들은 항상 당하게 돼 있어. 그게 정글의 법칙이야, 강자만이 살아남지”라고. 이 말은 중2 때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한 아이를 괴롭힐 때 했던 말과 매우 흡사했다. “약하니까 당하는 거야.” 나는 솔직히 이 말에 공감했다. 강했으면 당하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그리핀의 말에 맞받아치는 에릭의 말에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을 느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있지 정글에 있는 게 아냐.” 왜 이 당연한 생각을 못했을까? 그저 약하니까 당한다는 생각으로 괴롭힘을 무시했던 나 역시 ‘방관자’였다. 그래, 우린 분명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왜 정글의 법칙으로 살아야 하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책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림=출판사 제공 책 표지 일부)

이 책의 뒤표지엔 미국의 출판전문지인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서평 일부가 적혀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 책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약간은 고통스럽겠지만 꼭 읽어야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 말을 보고 거듭 공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모습을 참 많이 발견했다. 나는 에릭 그 자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끝까지 방관자로 남았던 것. 괴롭힘을 외면하던 내 모습, 괴롭힘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 나만 아니면 된다는 비겁함. 이것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참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말 그대로였다. 이 책은 나같이 소수의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가해자가 아닌 척 안도하는 ‘방관자’들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읽을 사람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중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의 방관자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몇 명의 가해자들이 한명의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갈 동안 그 수많은 주위 친구들은 무엇을 했을까? 분명 가해자보다 방관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나쁜 것이다. 다들 그 괴롭힘을 지켜보면서 피해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에 있었어도 나 역시 방관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고, 씁쓸했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비로소 선생님이 왜 아무런 말없이 이 책을 읽으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은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깨닫기를 바라신 것이었다. 가해자도 나쁘지만 가해자만큼 나쁜 것이 그 괴롭힘을 무시한 ‘우리’라고.

이 책은 나에게 메리 같은 존재다. 만약에 에릭에게 깨달음을 안겨준 메리가 없었다면 에릭은 아마 수많은 방관자들 중 한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메리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까지 내가 얼마나 나빴는지를 몰랐을 테고 지금까지도 괴롭힘을 보면 방관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아직 이 책을 못 읽어본 내 주위 사람들, 그리고 여러분과 여러분 주위에 있는 많은 ‘방관자’들이 꼭 한번 읽어보며 자신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추천한다.

※ 전북교육신문은 매주 금요일 [내 마음을 움직인 책]을 싣습니다. 이번 주 글쓴이가 다음 주에 책을 소개할 사람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이어갑니다. 다음 주에 책을 소개할 사람은 군산여상고 1학년 유다인 학생입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