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 법안심사소위 상정을 앞두고 있는 <학교밖 학업중단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청소년 당사자들이 공개적으로 폐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청소년들은 5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소년 선언문’을 낭독하고 법안이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낙인과 차별, 정보인권 침해를 조장한다며 폐기를 촉구했다. 선언에 참여한 탈학교 청소년은 200여 명으로, 거리 청소년들이 모이는 이동쉼터와 대안학교 재학생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한 서명 참여자 등이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법안에는) 우리에 대한 정보수집의 목적과 ‘국가적 손실’이라는 낙인만 있을 뿐”이라며 “‘탈학교’를 또 다른 삶으로 인정하고 학교밖 청소년에 대한 실질적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선언문은 또 정책당국을 향해 “당신들은 언제쯤 우리가 ‘문제아’이고 ‘관리’가 필요하다는 허상에서 깨어날 수 있는가”라고 묻고 “학교밖 청소년에 대한 실질적 지원은 개인정보 사찰과 겉핥기식 복지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인 청소년과의 소통과 존중 속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뒤에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법안에 관심을 보이는 의원들에 대한 방문이 이어졌다. 특히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희정 의원실에서는 이들의 방문에 “의도가 그렇지 않은데 억울하다”는 반응과 함께 “비판 의견을 수렴해 수정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법안의 국회 상정 초기부터 의견그룹으로 활동해 온 연합 사회단체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도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법안 폐기를 강하게 촉구했다. 성명에는 교육공동체 벗, 움직인는청소년센터 EXIT, 진보네트워크 등도 참여했다.
단체들은 성명에서 “법안은 ‘학업중단 청소년’을 ‘정규학교를 중단한’ 청소년으로 정의하고 그에 따른 지원도 초중등교육법이 정하는 학교복귀에 초점을 맞추는 등 ‘정규학교 중단’을 곧 ‘학업 중단’으로 잘못 보고 있다”며 “진정으로 학업중단 청소년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정규학교 외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하려는 청소년들을 포괄하는 입법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안은 학교밖 청소년들을 지원한다면서도 이들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법안은 구체적인 지원책으로 ‘학업복귀(제4조, 제6조)’, ‘가족관계(제7조)’, ‘취업(제8조)’을 열거하고 복교, 검정고시, 상급학교 진학 등을 위한 ‘학업지원 프로그램’을 제6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지원책의 핵심은 ‘학업복귀’다.
하지만 탈학교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게 현실이다. 학업에 대한 흥미 저하뿐 아니라 어려운 가정형편, 교사 및 또래와 갈등, 입시위주 공교육에 대한 좌절 등이 탈학교의 원인들이다. 반면 법안의 기조는 이들에게 다시 공교육으로 복귀할 것을 전제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법안에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단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법안이 비슷한 목적을 가진 현행 조례들에 미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청북도 학업중단청소년 지원 조례>는 교육지원뿐 아니라 전문상담활동 강화, 자활지원, 후견인제도 운영 등을 규정하고 있고 <서울특별시 학교밖 청소년 지원 조례>도 학교밖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교육지원, 자립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법안은 ‘학습 또는 교육의 기회’(제1조) 제공에 방점을 두는 반면 상담지원, 자립지원, 사회적 인식 개선 등 학업중단 청소년에게 시급한 지원 내용들은 결여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민감한 내용 중 하나는 이른바 ‘학업중단 청소년 정보시스템’ 구축과 관련된다. 법안 제11조는 학업중단청소년의 지원에 필요한 각종 자료 또는 정보의 효율적 처리와 기록 관리 업무의 전산화를 위해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학교생활기록부 자료는 물론 장관의 명령에 불과한 ‘여성가족부령’으로 정하는 사항까지 관련기관이나 단체에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안은 이처럼 행정부서에 포괄적인 정보수집 권한을 부여하는 등 필요 이상의 정보를 비인권적인 방법으로 수집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청소년 당사자의 동의, 수집된 정보의 관리책임, 활용범위, 보관기간 등 청소년의 신상과 관련된 정보의 보호에 대해서는 “여성가족부장관이 필요한 시책을 마련한다”는 정도로 갈음하고 있다. 단체들은 사회적 약자로써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가족부의 인권 의식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학교밖청소년팀 어쓰 활동가는 “운동본부 차원에서 ‘학교밖 청소년’ 등 용어 정립을 포함해 대체법률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며 “6일 열리는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법안 폐기 의견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일단 법안심사소위에 법안이 상정되는 19일까지 압력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탈학교 청소년 중심으로 가칭 <손실11조5902억원>이라는 다소 풍자 섞인 이름으로 이달 중순께 첫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모임 명칭은 법안 발의의원들이 제안이유에서 학업중단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거나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으로 전락하는 등 개인과 사회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 11조 590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 데 따른 것이다.
<관련기사: 학교밖 청소년 수치나 통계 아닌 삶으로 고민해야 / 2013. 11.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