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초중고교 급식조리종사자들이 여전히 매우 열악한 고용조건과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특히 지난해 6월 전북교육청과 전북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단체협약을 거쳐 이들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합의한 뒤의 실태여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조사결과는 또한 그 동안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보호책으로 인식돼온 무기계약이 저임금과 고강도노동, 고용불안으로 특징지어지는 비정규직의 처지에 대한 개선책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통계에서 무기계약 학교급식종사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조사결과는 이들의 노동조건이 ‘비정규직’ 고유의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 유일의 비정규직노동자 관련 공공기관인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센터장 윤희만)는 11일 전북교육청 기자실에서 ‘2013년 학교급식종사자 실태조사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결과보고서를 발표하고 전북교육청에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지원센터는 지난해 10월 2일 전주시 125개 초중고교와 특수학교에 근무하는 조리사, 조리원, 급식보조원, 영양사, 영양교사 등 5개 직종 1,052명에게 48개의 질문을 담은 설문지를 전달한 뒤 11월 13일 103개 학교에서 725부를 수합해 분석했다.
응답자의 99.7%가 여성이었고, 40대와 50대가 92.8%였다. 또한 설문에 응답한 5개 직종 노동자 중 조리원이 77.6%, 조리사가 14.9%였다. 이에 비해 영양사 5.1%, 영양교사 1.7%, 급식보조원 0.7%였다. 이는 조리원과 조리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급식현장의 실태를 반영한 수치다.
지원센터의 조사는 고용과 노동조건, 노동인권, 노동환경 등 크게 세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전주지역 학교급식조리종사자들은 근무경력이 평균 7년 이상인 장기근속자인데도 고용형태가 정규직인 노동자는 전체의 4.5%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무기계약직은 74.5%에 달했다. 설문에 응답한 급식조리종사자들의 가장 큰 요구도 ‘정규직으로 전환’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자 61.5%가 정규직 전환을, 24.9%가 호봉승급이 있는 교육청 무기계약직을 원했다. 이는 조사대상자 대부분이 무기계약직 고용형태만으로는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사결과보고서는 “현행 무기계약직은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 급여 및 여타 노동조건이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큰 차이가 존재하는 바 비정규직노동자가 겪고 있는 저임금, 장시간노동 등 노동조건의 열악성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조사대상자 90% 이상이 현행 임금제도의 문제점으로 호봉제 적용이 안 되고 있다는 점과 일당이 너무 낮다는 점을 들었다. 조리종사자들은 경력이 10~20년이 되어도 1~2년 일한 종사자들과 임금격차가 거의 없다. 실제로는 장기근속자일수록 임금이 하락하는 셈이다.
지원센터는 “현행 전주지역 학교급식조리종사자는 연봉기준일이 약 280일”이라며 “기본급여가 연 1,300만원 수준, 즉 생활임금에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저임금 노동자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생활임금수준으로 급여를 보전하려면 연봉기준일수를 365일로 책정해야 한다는 게 지원센터의 설명이다. 또한 방학 기간에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휴업수당을 우선 지급하는 것도 보조적인 대안으로 제시됐다.
또한 연차나 병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56.9%나 됐다. 전북교육청이 2013년 개선사항으로 약속했던 대체인력풀이 운영되지 않으면서 조리종사자가 개별적으로 대체인력을 구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다는 응답자도 28.1%에 달했는데, 신분이 불안정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처지가 못 되는 탓이다.
기존 영양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영양교사 제도를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양교사 자격을 갖춘 영양사부터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야 학교급식을 내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리사와 조리원 역시 반드시 정규직화 해야 하는 직종으로 봤다. 학교비정규직 관련 노조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육공무직특별법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다. 교육공무직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준공무원의 처우를 받는 직종이다.
한편, 이들 직종의 노동자들에 대해 교직원들은 ‘여사님’, 학생들은 ‘아줌마, 언니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호칭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정도에 따라 매우 큰 편차를 보였다. 특히 조리사와 조리원에 대해 교직원 73.4%가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며, 학생 74%가 ‘아줌마, 언니 등’을 사용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6~7%에 그쳤다.
학생 건강에 기여한다고 믿으며(98.8%)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90.8%) 반면, 교직원들로부터 존중받는다 응답은 4점 만점에서 2.29에 불과했다. 조리사들이 2.18로 가장 낮았지만 정규교사인 영양교사도 2.83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교직사회가 일반적으로 급식업무를 교육업무로 여기지 않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급식종사자들은 학교급식 근무환경 개선방안으로 △급식실 유해환경 개선(32%) △충분한 휴식시간(25.7%) △적정한 배식기준 인원(29.5%) △근무로 인한 질병 및 재해 예방교육(11.2%) 등을 들었다. 이 설문항목에 대해서는 조리사와 조리원, 영양교사와 영양사 등 모든 직종의 종사자들이 거의 일치된 의견을 보인 점이 주목된다. 급식실 노동자라면 누구나 그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느끼는 셈이다.
그렇다면 조리종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업무는 무엇일까. 압도적인 1위는 후드(연기와 냄새 배출장치)와 천장 청소(69.1%)였다. 다음으로 힘든 업무가 설거지 및 정리과정(11.2%), 음식조리과정(8.6%), 식기수거과정(7.4%) 등이었다. 정작 조리과정보다는 조리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부분에서 고강도노동에 시달리는 셈이다.
더구나 고무장갑을 끼고 고무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물기 있는 조리대 위에 올라가 보호장구 없이 약품 청소를 하는 위험천만한 환경이다. 윤희만 지원센터장은 “심층면접조사 결과 후드청소 중 추락으로 인한 골절, 고온증기에 의한 화상, 소음 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원센터는 전문청소업체에 후드청소를 맡기는 등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된 노동으로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조리종사자들을 교육청이 직접 근골격계 질환자 명단을 작성 관리하고 관련 병원과 연계해 지속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따르면 조리사의 85.3%, 조리원의 79.2%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 중 병원 치료를 받은 비율도 발병자 중 거의 대부분인 95.8%였다. 실 발병율이 높음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또한 조리사의 53%, 조리원의 49%가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지원센터는 또한 산업재해 사고, 근골격계 질환의 발생률을 낮추고 휴식시간과 식사시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노동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교급식 배치기준을 현행보다 낮추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문에 따르면 배치기준에 대해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조리종사자의 58.7%(조리사의 62.7%)가 적당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적정한 학교급식 배치기준 인원을 80명에서 100명이라고 응답했다.
한편, 업무관련 치료가 필요할 경우 학교에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할 것이라는 응답은 51.3%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신분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권리 행사가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실제로 2012년 한 해 동안 업무 중 사고를 당한 조리종사자는 33.9%로 나타났고, 조리사의 경우 10명 중 4명꼴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이 같은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받은 비율도 32.5%였다. 그러나 정작 산재보험금으로 치료가 이루어진 경우는 13.4%밖에 안 된 반면, 본인부담은 78.7%나 됐다.
지원센터는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실태조사 결과 의견서’를 기자회견 직후 교육감실에 전달했다.
센터는 구체적으로 △「전라북도 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에 ‘급식종사자의 작업환경 및 근로조건’ 조항을 신설한 개정안을 마련해 발의해줄 것 △학교급식종사자의 정규직화를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주요정책사항으로 수립해 체계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할 것을 전북교육청과 김승환 교육감에게 제안했다.
지원센터는 아울러 예산확보 및 정책수립에서 중앙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고 긴밀한 협력을 도모해달라고 요청했다.
김호근 지원센터 상담실장은 “학교급식조례는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질 좋은 식사를 제공하자는 것인데, 조사결과 종사자들의 처우나 신분안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한 급식조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조례에 이들의 근로조건 조항을 넣은 개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조리종사자에 대해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마땅하지만 예산 수립 등 어려움을 감안해 전북교육청에 주요정책과제로 선정, 체계적 이행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센터는 다음 주 전주교육지원청장을 면담하기로 하고 김승환 전북교육감에게는 면담을 요청해둔 상태다. 이밖에 급식실 환경 개선 모니터링,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간담회, 급식종사자 호칭 개선 캠페인, 정규직 전환 계획에 대한 모니터링 등도 진행하기로 했다.
지원센터는 한편 초등 스포츠강사와 위클래스 전문상담사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보고 적절한 시기에 실태조사와 대책수립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김승환 전북교육감에게 전달한 의견서 전문(全文).
■ 실태조사 결과 의견서
1. 제출인(윤희만)은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전라북도 전주시조례 제2779호)에 운영되는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이하 ‘센터’라 한다.)의 센터장으로 ‘2013년 전주시 학교급식종사자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라 한다.)를 실시하였습니다.
2. 전라북도교육감은 센터의 ‘실태조사’ 대상자들에 대한 인건비 및 근로조건, 인사관리 전반에 관한 지침의 결정권자로서 전라북도 교육 사무에 관한 집행기관의 장입니다.
3. 센터는 실태조사를 통하여 전주지역 학교급식업무가 상시, 지속적인 필수업무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대상자인 전주지역 학교급식종사자는 평균근무경력 7년의 장기근속 숙련노동자이지만 그 지위는 95.5%가 정규직이 아님을 확인하였습니다.
4.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는 법률적 용어가 아닌, 정규직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임금을 적게 주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사회적 용어입니다. OECD에서도 '임시직 근로자(temporary worker)' 정도로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5. 노동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유지와 발전의 작동원리임을 비춰봤을 때, 전주지역 학교급식업무는 수행업무의 정규성(지속성, 상시성, 필수성)과 업무수행자의 정규직 아님으로 인한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6. 따라서 센터는 실태조사의 ‘결론 및 과제’를 제출하며, 이를 이행하기 위해
1) ‘급식종사원의 작업환경 및 근로조건’의 조항을 삽입한「전라북도 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개정안을 마련하여 발의하여 주시고
2) 학교급식종사자의 정규직화를 위한 중장기적 계획 수립을 전라북도교육청의 주요정책사항으로 수립하여 체계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할 것을 의견으로 제출합니다.
7. 아울러 예산확보 및 정책수립에 있어 중앙정부에 적극적인 건의 및 긴밀한 협력을 도모할 것을 요청드립니다.
2014년 2월 11일
전라북도교육감 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