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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혐오 집단괴롭힘으로 학생 자살, 학교엔 면죄부


... 문수현 (2014-02-20 21:43:27)

집단 괴롭힘에 대한 학교 측의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한 학생의 자살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학교가 피해 학생들의 자살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 마련에 소홀한 현실에서 이를 정당화한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법원 판결의 주요 논지는 ‘괴롭힘의 빈도와 정도가 중대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만큼 고통스러운 폭력이 중대한 수준이 아니라면, 어떠한 폭력이 중대한 폭력이냐는 것이다.

더구나 법원은 “담임교사가 학생에 대한 보호감독의무를 다하지 않아 집단 괴롭힘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학생이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명백하다”고 인정한 상황이었다.

지난 2009년 부산의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동성애혐오성 집단 괴롭힘으로 인해 A군(1학년·당시 만15세)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피해학생은 다수 학생들로부터 낙인찍히고 “뚱녀”, “걸레년”이라는 욕설과 비하,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이 같은 괴롭힘은 반년 이상 지속됐고 그 정도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집단 괴롭힘에 동조하는 가해학생의 수가 늘어나는 한편 괴롭힘의 형태와 정도도 점점 심해져 신체적 폭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피해학생이 상담과 경위서 등을 통해 학생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뿐 아니라 자살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표현했는데도 추가적인 위기개입 노력을 하지 않았다. 교사는 특히 청소년 정신건강 및 문제행동 선별설문과 우울척도검사, 자살생각척도검사, 불안척도검사 등에서 A군이 심한 우울상태, 자살충동, 극심한 불안상태에 있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담임교사는 가해학생들에게는 가벼운 주의를 주는 대신 피해학생에게는 전학을 권유했다.

A군의 부모는 “학생 보호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부산시(교육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1심과 2심 법원은 학생의 자살에 대한 학교 측의 책임을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결국 부산고법은 지난 12일 판결에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집단괴롭힘에 대한 학교 측의 보호감독의무만 인정하고, 자살에 대한 학교 책임은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20개 인권·사회단체의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19일 논평을 내고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와 자살은 분리될 수 없다”며 “동성애혐오성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학생의 자살에 학교와 교육청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지개행동은 또한 “이번 판결이 소수자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집단적 폭력은 심각한 것이 아니며 이로 인한 자살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으로 연결될까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원은 학교와 교육청에 책임을 묻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피해학생 부모를 대리해 이 사건을 담당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한가람 변호사는 “성소수자, 장애인, 다문화가정 아동 등 소수자에 대한 집단 괴롭힘이 실제로 보고되고 있고 이들의 자살 위험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번 판결은 피해학생의 자살에 대한 학교 책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소수자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교육기관의 의무를 너무 소극적으로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한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 괴롭힘에 대해서는 학교 측이 예방책임을 갖는다고 명확히 했고, 성소수자 학생에 관해 전문단체의 자문을 받아야 된다는 등의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판결에서, "이 사건에서 담임교사는 △교육청이나 성소수자 단체의 자문을 거쳐 성소수자의 처지와 심리를 이해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성격을 알아야 했고 △그런 인식의 토대 위에서 가해 학생들에게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직접 교육을 하거나 전문기관의 상담을 받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또 "담임교사가 △타인에게 그의 동성애적 성향을 알릴 때도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방법으로 신뢰관계를 유지했어야 하며 △피해학생의 부모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고하거나 직권으로 전문상담기관에 의뢰를 했어야 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