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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강등→정직→취소판결’ 김영생 교장에겐 무슨 일이?


... 문수현 (2014-04-22 17:20:18)

지난 2월 27일 대법원 판결로 새롭게 주목받은 전북 무주부당초 김영생 교장 사건. 꽤 널리 알려져 유명한 사건이지만 그 전말이 드러난 적은 없다. 전북교육신문이 이 사건을 따라가 봤다. 두 번에 나눠 싣는다. - [편집자]

41년 전인 1973년 초등학교 교사로 신규 임용된 이후 줄곧 지적장애 학생의 한글해득을 도와온 시골초등학교 교장이 있다. 전북의 한적한 시골학교인 무주부당초등학교의 김영생 교장이다. 그는 현재 이 학교에서 교장생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그는 최근 2년 10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싸움을 벌여왔다. 특수교사의 수업권을 박탈했다는 혐의로 전북교육청으로부터 무기한 사안감사를 받았고, 그 직후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직위해제와 함께 교감으로 강등됐다. 2012년 2월의 일이다. 그는 사건을 교원소청심사위원회로 가져갔고, 위원회는 강등 처분은 지나치다며 3개월 정직처분을 결정했다(아래 사진 : 무주부당초 교장실의 김영생 교장)



이후 그는 7개월 동안 학교를 떠나야 했고 긴 법정투쟁을 벌여야 했다. 지난 2월 27일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서 길었던 법정투쟁은 승소(정직처분취소)로 끝이 났다.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됐고, 오는 5~6월 사이 전북교육청은 다시 징계위원회를 소집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양심과 명예에 관한 그의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사건의 핵심쟁점인 ‘특수교사 수업권 박탈’이라는 낙인을 그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아직도 자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해명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의문을 품고 있다.

사건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전북 정읍시 A초등학교에 교장으로 5년째 재직하고 있었다. 4년이 지나면 임지를 옮겨야 하지만 학부모들이 떠나지 말아달라며 붙잡았다. 도교육청도 ‘아름다운 만류’에 화답했다.

[김] “2007년도에 처음 교장이 돼서 막 그 학교에 가니까 폐교 논란이 한창이에요. 4학급에 전교생이 23명밖에 안 됐으니까요. 교육청은 폐교를 종용하고 선임교장도 동의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있었죠.”

그는 학교를 살려보자고 교사들과 의기투합했다. 학교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학부모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다. 교장은 세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학년을 맡으면 바꾸지 말자, 업무를 맡으면 바꾸지 말자, 바깥체육을 많이 시키자.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나 학교는 6학급으로, 학생 수는 40명으로 늘었다. 3년이 지나 2010년도에는 장애학생 10명을 포함해 전체 학생 수가 100명으로 불었다. 그렇게 학생이 는 데에는 영어프로그램의 효과도 있었고, 문맹인 지적장애 학생이 한글을 깨우치도록 지도한 덕도 있었다.

이렇게 그는 2011년 이 학교에서 교장 5년차를 맞게 됐고 2차 임기(중임)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그해 6월부터, 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오기 전에 그는 교장에서 교감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김] “제 교육프로그램으로 한글을 깨우치려고 전주에서 통학하는 장애학생들이 있었어요. 도지사가 다달이 통학비 일부를 지원해왔죠. 그런데 정읍교육지원청 장학사가 이제부턴 이 아이들 세 명을 지원 대상에 넣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결과적으로 예년처럼 지원을 받게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장학사와 언쟁이 있었어요. 직접적인 발단은 이 사건이에요.”

장학사는 며칠 뒤 도교육청에 “김 교장이 전주에서 통학하는 장애학생들에게 한글지도를 못 하도록 해야 한다”고 수차례 촉구한다. 장학사의 명분은 「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7조에 있는 내용이었다.

즉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치할 때에는 특수교육대상자의 장애정도·능력·보호자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해야 한다”는 조항의 후단(“가까운 곳”)이었다.

1주일 뒤 도교육청 장학사가 A초를 방문해 “전주에서 통학하는 장애학생들을 전주로 돌려보내라”는 도교육청 결정을 교장에게 전달하지만 교장은 이를 거부한다. 장학사가 돌아서며 남긴 말은 “교장선생님, 다른 학교로 가셔야겠네요. 어쩔 수 없겠어요”였다.

보름 뒤인 7월초 정읍교육청 장학관 J씨가 도교육청 결정을 교장에게 다시 통첩한다. 교장은 장애학생의 학교선택권이 보호자에게 있고 교장이나 교육청이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다시 주장하며 이를 거절한다.

김 교장이 어느 쪽이든 선택할 여지가 남아있던 시점은 바로 그때까지였다.

[김] “정읍 장학관이 찾아와서 ‘교장이 장애학생들에게 한글교육을 계속하면 교감이 무주 무풍초등학교로 갈 수 있다’고 겁주더군요. 저는 황당했죠. 잘못했으면 교장이 잘못했지 왜 교감을 벌준다고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교감은 막 승진한 지 넉 달된 여교감인데, 그 말을 듣고 저한테 와서 엉엉 울어요. 저는 그때 무주 무풍이란 곳을 처음 들었어요. 말하자면 유배지였던 거죠.”

[김] “도교육청은 그렇게 저를 기어이 옮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중임을 승인한 지 6개월도 안 돼서 옮기려니까 명분이 필요했겠죠. 인사담당 장학관이 모든 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저에 대해 평가하도록 합니다. 교감에게는 저를 평가한 점수를 매기라고 하고요. 만약 60점 밑이면 그걸 근거로 교장을 옮기겠다면서요”(아래 사진 : 장애학생 학부모가 김 교장의 한글프로그램을 반영해 만든 자음카드).



갑갑한 처지에 놓이게 된 교감은 고뇌 끝에 70점을 주고, 이 사실을 교장에게 고백한다. 1주일 뒤 도교육청이 한 일은 놀라웠다. 다른 장학관으로 하여금 인사담당 장학관이 한 일을 그대로 한 번 더 반복하게 한 것이다. 이번에는 교감도 교장에게 아무 말을 못했다.

[김] “교감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겠죠. 그러니까 어떤 점수(60미만)를 준 거죠. 그걸 근거 삼아 도교육청이 인사심의위원회를 열고 ‘교장 점수가 이렇게 나왔으니 부득불 교장을 옮겨야겠다.’ 이렇게 인사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서류를 만들었어요. 이것은 상식으로 어떻게 이해가 되는가요?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김] “그렇게 저를 옮겼어요. 저도 ‘무주 무풍’ 겁박 뒤론 떠나자고 맘을 먹었고요. 그런데 저를 전주로 옮겼으면 이런 일이 안 났어요. 한글 하는 장애학생 대부분이 정읍에 사는 아이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 자격조건이 허락하고 제가 희망하는데도 저를 전주로 보내지 않고 바로 옆 학교로 옮기는 거예요. 한 면에 들어있는 학교로.”

전북교육청도 어떤 압박들에 시달려 이 같은 일관성 없는 결정을 내렸을까? 장애학생들에게 한글 교육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정읍교육청 특수교육담당 장학사 등의 강력한 촉구, 이를 받아들여 교장에게 중단을 요구했으나 관철되지 않은 사정. 그러면, 교장을 멀리 옮겼어야 했다. 하지만 약속대로 교장을 계속 머물게 해달라는 장애학생 학부모들의 탄원.

교장은 따졌다. 한글 교육을 문제 삼더니 이제는 하라는 거냐.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돌아온 답은 “한글은 학부모들이 원해서 할 수없이”였다. 어쨌든 교장은 인사발령을 받아 2011년 9월 1일자로 이웃학교인 B초등학교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사태가 좀 더 급박하게 돌아간다.

옮겨간 B초등학교에선 학부모들이 교장을 반기지 않았다. 교장이 부임한 지 닷새 만에, 장애아동을 둔 이 학교의 한 학부모가 “교장 따라 장애학생들 10명이 몰려오면 우리 아이가 찬밥이 된다(소외된다)”며 노골적인 거부활동에 나섰다. 약 15가구 일반학생 학부모들도 나름대로 이유를 들어 장애학생들을 거부하며 동참했다. “10명은 너무 많으니 3명만 받으라”는 요구가 나왔다.

11월초에는 학부모 1명이 도교육청에 인터넷 민원을 제출한다. 도교육청은 장학사를 파견했고 민원해결조치 3개항을 교장에게 지시했다. 그 중 하나가 “(교장이 따로 가르치는) 한글 장애학생 4명을 즉각 교실에 들여보내라”는 것이었다. 학부모들의 장애학생 거부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조치였다.

[김] “도교육청은 장애학생 4명이 오전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 걸 문제 삼았어요. 하지만 저는 징계위에 가서도 말했듯이, 한글이 되기 전에는 다른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5~6개월 집중해서 한글을 끝낸 후에 통합학습에 힘을 써야 한다, 한글 읽기 마스터는 인공호흡 응급처치와 같다, 또 단기간에 가능하기 때문에 형편이 되기만 하면 우선적으로 가능하면 해야 한다 라고요.”

11월 중순에도 학부모의 민원이 도교육청에 올라가고 도교육청은 또 다시 장학관을 파견해 조치한다. 교장은 이제 모든 조치에 순응한다. 하지만 12월 1일 학부모 대표 10명이 교육감을 면담해 ‘부적격 교장에 대한 징계와 전보’를 요구하는 민원을 전달하고, 이후 교육감 지시로 감사가 진행되며 그에 따른 징계절차가 이어진다.

전북교육청 감사담당관은 2012년 1월초에 작성한 ‘B초 교장 비위 조사결과 처리’ 보고서에서 “12월 1일 민원 내용은, 교장의 독단적인 학교운영으로 특수교사의 수업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으며, 자질과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징계처분과 전보조치를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특수교사 수업권 박탈”이라는 소제목도 등장한다.

교장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민원에는 ‘특수교사 수업권 침해(박탈)’이라는 내용이 없고, 중징계를 위해 새로 꾸며진 내용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저는 민원이 그렇게 올라간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특수교사 수업권을 박탈한 적이 없더라고요. 전주지법 재판부를 통해서 민원서 사본을 요청했지만 도교육청은 끝까지 안 보여주더군요. 다른 절차를 통해서 경찰서에서 사본을 봤는데, 열 번 스무 번을 읽어봐도 특수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이 있질 않아요.”

교장은 징계위에 불려가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는다. 그가 중징계 처분을 받기 전에 예상한 징계수준은 ‘경고’였다.

[김] “저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아무리 징계위에 올라가도, 저는 교육감님을 상당히 믿었어요. 지성인이고 법조인이고, 어떤 원리에 의해서 가닥을 지을 거다 그렇게 예상을 했죠. 그런데 감사가 끝나더니 느닷없이 직위해제가 떨어지고 그 다음에 보름 만에 강등을 때려버리더라고요. 징계 처분 나기 전에 감사받으면서 제가 교육감 면담을 몇 번 신청을 했어요. 이건 이렇게 됐다는 상황설명을 하려고. 그런데 절대 안 만나주는 거예요. 다 지나간 일이기는 한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제 상식하고는 어긋난 게 많았어요.”

교장은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거짓말같이 들리기도 할 거라고 말했다. 교감에게 무주 무풍으로 갈 수 있다고 겁줘 교장을 배척하도록 강제한 사건, 교사들과 교감에게 교장에 대한 평가 점수를 2차례나 매기게 해 끝내 인사심의위원회 전보조치의 근거를 만들어낸 점, 민원 내용에 없던 ‘특수교사수업권 박탈’을 핵심근거로 중징계를 내린 점, 게다가 무엇보다도 장애아동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한 점 들이 그로선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었다.

물론, 도교육청이 중징계를 내린 데도 이유가 있었다. 도교육청의 주장은 감사담당자가 작성한 ‘비위 조사결과 처리 보고서’와 ‘교육공무원 징계의결요구서’, 징계위원회에서 김 교장과 교육국장 등 사이에 이루어진 ‘문답’, 교육감의 ‘징계처분사유설명서’, 전북교육공무원일반징계위원회의 ‘결정서’ 등에 충실하게 반영돼 있다.

위 문서들은 소송과정에서 대부분 재판부에 제출됐다. 이밖에도 김승환 교육감을 대신해 감사담당자들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 대법원을 포함한 법원의 판결문들도 전북교육청의 입장을 공증하고 있다.

이중 도교육청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징계의결서’에 교장의 비위로 적시된 내용은 모두 7가지다. △특수교육 교육과정 편법 운영 및 특수교사 수업권 박탈 △특수교육대상자 편법 유급처리 △특수교육대상자 전입학 지연 등 편법 처리 △특수교육대상자 학년배치 기준 위반 △학교장 근무 불성실 및 품위손상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학교운영 △지역교육지원청 및 맞춤형컨설팅 지도사항 미이행(아래 사진 : 안동장애인복지관 한글반에서 강의하는 김영생 교장).



(24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