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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 암벽등반가들, 장비 대신 청소도구 들다


... 문수현 (2014-06-23 23:50:50)

고창 선운산은 암벽등반의 메카다. 고유한 이름을 가진 암벽등반루트만 170개가 넘는다. 그 중 대다수인 150개 루트가 투구바위, 속살바위, 할매바위라 부르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에 분포돼 있다.

스위스 출신 암벽등반가 프레드 니콜(Fred Nicole)은 “암벽등반에서 얻는 가장 큰 보상은 발견”이라고 말했다. “암벽등반은 신체적인 활동 이상의 어떤 것”이라 말하는가 하면, “인간의 규칙을 따르지 말고 자연의 규칙을 따르자”고 등반가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자연의 규칙을 따르고 존중하려는 마음을 품은 암병등반가들이 선운산에 모였다. 선운산 암벽등반의 역사가 20년을 넘겼고 평소에도 휴일이면 100명 가까운 암벽등반가들이 선운산 속살바위와 투구바위 등을 찾아 삼삼오오 등반을 즐기지만, 이날만큼은 등반장비만 갖춘 게 아니라 복장을 통일하고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에코백과 집게, 삽, 루트청소용 솔 등을 들었다.



선운산 로컬 클라이머와 호남권 락 클라이머가 주최·주관하고 휠라아웃도어, 세로또레아웃도어, 사람과산, 마운틴TV 등이 후원한 ‘2014년 1차 선운산 암벽등반지 청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암벽등반가 70여 명이 대전, 청주, 부산, 경북, 대구, 안양, 군산, 목포, 광주 등지에서 모여들었다.

이들은 오전 8시 30분 선운산 도솔제쉼터에 도착해 특유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1부 행사를 가졌다. 후원업체가 제공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주관단체에서 준비한 청소도구를 챙겨들었다.

선운산 암벽등반지 청소를 5년째 이끌어가고 있는 이윤재 광주실내암벽 대표가 하루 일정을 안내했다. 새로운 등반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제안도 이어졌다. 주말에는 프로젝트등반가들을 위해 톱로핑등반을 자제하자, 암벽화 줄세우기를 하지 말자, 큰 소리로 동작 코치를 하지 말자 등 제안들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이윽고 기념촬영을 마친 뒤 속살바위로 향했다.

이윤재 대표는 “2008년에 <암벽등반 가이드북 선운산>을 제작하면서 한상훈, 정장희씨 등과 함께 ‘새롭게 등반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의기투합이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클라이머들이 머무는 자리에 최소한 쓰레기는 없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처음 암벽등반지 청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청소등반에는 친환경적 대소변처리 용품을 개발해 무상으로 배포하면서 ‘에코 락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유학재씨(54)도 참여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에코백’과 ‘에코삽’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사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유학재씨의 설명을 인용한다.


(사진 왼쪽: '에코 락 프로젝트' 펼치는 산악인 유학재씨. 오른쪽은 이윤재 광주실내암벽 대표)

“제가 ‘에코 락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만 3년이 돼 갑니다. 인수봉에 대소변을 너무 무분별하게 많이 보기에 그걸 없애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걸 하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2005년부터 ‘풋튜브’라 해서 PVC통을 만들어가지고 다녔는데 너무 무겁고 사람들이 잘 사용을 안 해서 시나브로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그 뒤로 간편하게 이런 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건 에코백이라 해서 암벽등반처럼 대소변을 볼 수 없는 장소에 있을 때 처리해서 가지고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든 봉툽니다. 구성품은 세 가지로 돼 있어요. 겉봉투와 속봉투가 있고, 주요재료인 에코겔과 에코그릴이 있습니다.

먼저, 봉투가 굉장히 큽니다. 외국에서 볼 수 있는, 간이화장실에 변기만 달려있는 곳에서 쓰이는 그 봉투와 같습니다. 이 봉투를 바닥에 잘 펼쳐서 볼일을 본 다음에 에코겔을 뿌립니다. 봉투를 묶을 때는 바람을 꼭 빼야 합니다. 안 빼면 두둑해져서 겉봉투에 안 들어갑니다.

에코겔은 어린이 기저귀나 여성 생리대에 들어가는 재룝니다. 물 2리터를 겔로 만드는 용량이 봉투에 들어있습니다. 고분자 하나가 물 1천 배를 흡수합니다. 대소변과 섞이면 응집력이 생겨서 압력을 받아도 밖으로 새거나 터지지 않습니다. 처리는 하산해서 일반 쓰레기와 같이 버리면 됩니다.

에코그릴은 비료를 만드는 부숙재에요. 쌀겨 30%와 산화철·황산철 70%가 들어간 화합물입니다. 이게 암모니아와 반응하면 무색무취가 됩니다. 이걸 뿌린 데는 파리와 구더기가 생기지 않아요. 땅을 파고 용변을 묻을 수 있는 장소에서 이걸 뿌리고 같이 묻어주면, 3배에서 5배까지 빠르게 생화학 변화가 일어나서 배변이 빨리 퇴비로 변합니다.

제가 처음엔 에코백만 했는데, 나중엔 땅 파는 용도로 에코삽을 만들었어요. 길이가 15.5cm입니다. 우리가 엘엔티(LNT-Leave No Trace. 흔적 안 남기기) 운동에서 얘기하는 “자기 대소변을 땅을 파서 묻으라”고 할 때 그 깊이가 최소 15cm입니다. 15~20cm를 묻어야 땅에 있는 미생물과 풀이 영향을 안 받는다고 해요. 15cm 이상은 산소가 안 들어가서 거기 미생물이 없답니다. 꼭 이 에코삽 길이 이상 파서 묻으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가져다 쓰십시오. 사실 저는 삽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비상용으로 많이 씁니다. 소주병 따개로도 왔다입니다. 더 궁금하시면 다음카페 ‘유학재산행이야기’를 참고하세요.”



다음은 이날 산행 중 유학재씨와 가진 인터뷰 내용.

○ 선생님께서는 ‘에코 락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고, 이 에코백도 직접 개발하셨지요?

= 예. 외국에서는 화장실이 없는 곳, 예를 들어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 비슷한 봉투를 사용하게끔 합니다. 매킨리(북아메리카 최고봉) 같은 곳에서도 변통을 주고요. 그럼 거기다 싸서 묶어서 버리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엔 그게 없으니까 제가 2005년도에 빅월(Big Wall) 등반을 할 때 할 수없이 ‘풋튜브’(Foot Tube)라고 해가지고 똥통을 가지고 다녔어요. 하수도에 쓰는 PVC 100mm 관으로 만들었는데 너무 무거워가지고 사람들이 못 갖고 다니는 거예요. 서울에서 3년 했는데 사람들이 짐도 많고 그러니까 안 가지고 다니는 거죠. 저도 사실은 불편했고요. 그러다가 2011년도에 다시 인수봉 등반을 갔더니 너무 지저분한 거예요. 안 되겠다, 이걸 다시 한 번 해보자 해서 에코백을 개발하게 됐어요.

○ 개발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이걸 완성하는 데 한 6개월 이상 걸렸어요. 처음엔 미국이나 영국에서 재료를 수입하려고 했는데 관계사들이 제품만 팔지 재료를 안 팔아요. 외국 사이트도 많이 들어가서 찾아보고 하면서 결국 재료들이 뭐고 어떻게 배합해야 하는지를 알아냈어요. 에코백에 들어있는 하얀 가루는 아이스팩에 들어있는 재료하고 같은 거예요. 부숙제 같은 경우는 농사에서 퇴비를 만들 때 쓰는 거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전부 액상으로 나와요. 이엠(EM) 비슷한 거죠. 그것 자체가 퇴비가 되는 게 아니고, 빨리 썩게 하는 부숙제에요. 산화철이 들어가서 산화가 빨리 돼서 빨리 썩게 하는 거죠. 우리가 본 배변을 빨리 썩게 해서 친환경적으로 만들자는 거거든요. 그런 취지로 착안해서 했는데, 재료를 찾아서 조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공부하고 밤새도록 인터넷 뒤지고.

○ 그 전까지 국내엔 그런 제품도 전무했다는 말씀이시죠?

= 그렇죠. 저런 게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저게 산업용제나 농업용제로는 많이 쓰이고 있는 제품들이거든요. 에코그린 같은 경우는 전선에도 들어가요. 물을 흡수하고 막을 형성해서 물을 안 들어가게 하는 방수제로 쓰이거든요. 이스라엘 키부츠 농장에서도 쓰입니다. 사막에서 농사지을 때 저걸 모래하고 섞어 수분을 많이 흡수해서 천천히 증발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저게 또 화원에 있는 조그만 화분 안에도 들어가요. 물을 자주 안 줘도 화초가 오래 살게 하는 거죠. 그런 재료들을 접목해서 여기에 쓴 겁니다. 2010년부터 공부해서 2011년부턴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 그럼 상용화 돼 있겠군요.

= 아닙니다. 제가 그냥 집에서 혼자 만들어요. 담고 포장하고 필요한 사람한테 무상으로 보내주는 겁니다. 기존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쓸 뿐인 걸요. 판매보다는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요. ‘클린 락 클라이밍’을 위해서요. 한글로 하면 ‘향기 나는 바위를 위하여’ 그게 모톱니다. 바위에 똥 냄새가 아니라 바위냄새가 나고 꽃향기가 나게 해보자. 그걸 우리끼리 해보자 라는 겁니다.

○ 같이 하는 분들이 있나요?

= 처음에는 후배들이 동참해줬어요. 저걸 포장할 때 제가 후배들을 불렀죠. 한 번 포장하면 보통 2천개 봉투를 담아요. 그런데 봉투 값보다 술값이 더 들어가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퇴근해가지고 집에서 틈틈이 합니다. 재료 떨어지면 담아놨다가 필요한 데 배포하고 그러거든요.

○ 비용이 상당히 드는 일일 텐데요.

= 에코백은 실상 돈이 많이 안 들어요. 삽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었어요. 스테인리스 스틸이거든요. 금형비만 한 천만 원 짜리에요. 일시불로 할 수가 없어서, 산에 다니는 선배들 중에 그런 공장을 크게 하시는 분을 만나 술 먹으면서 “형님, 이거 좀 도와주세요!” 해서 금형을 지원받았죠. 한국산악회 부회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하지만 재료비도 만만치 않았죠. 그래서 철판장사 하는 선배를 찾아가서 “재료 3천개 분을 일단 대주십쇼. 그러면 제가 이런 활동을 하겠습니다.” 했더니 다 만들어주셨어요. 두 분 다 흔쾌히 나서주셨죠. 나머지는 제가 가공하고, 에코삽 케이스도 등산 쪽 봉제를 하는 친구한테 “이거 케이스가 필요하다. 너는 그걸로 이 에코 락 프로젝트에 동참을 해라.” 설득해서 케이스도 공짜로 만들었고요. 그래도 부수적으로 돈이 많이 들었어요.

○ 에코백은 물론이고 에코삽까지 무상으로 배포하고 계신 겁니까?

= 예. 봉투 같은 경우엔 목돈이 안 들어가요. 그때그때 필요하면 만들면 되니까. 한데 삽 같은 경운 한 번에 많이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목돈이 들어가요. 그래서 인터넷카페에서 현금이나 물품, 장비 후원을 받아서 충당을 해보려고 하는데 후원은 별로 없습니다. 계속 돈은 들어가야 될 거 같아요.

○ 인터넷카페 이름이 뭐죠?

= ‘유학재산행이야기’. 거기 보면 그동안 내역들이 죽 설명이 돼 있을 겁니다. 기사 쓰시는 데 도움될 거예요. 일부에선 처음에 이거 가지고 뭐, 공단에 가라 산림청에 가라, 대한산악연맹에도 찾아가 봐라, 그쪽에서 해야 될 일이다 라고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거기 찾아가서 얘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이건 산악인들의 자발적인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환경운동으로 발돋움시키고 싶어요. 그런데 그걸 공단에다 다 줘버리고 산림청에 줘버리면 운동이 아니라 갑자기 강요가 돼버리거든요. 그래서 어떤 단체의 힘을 빌리지 말자는 얘깁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자는 거죠.



○ 선생님께선 특별히 어디 소속이 없으신가요?

= 저는 사단법인 한국산악회에 있어요. 등반기술분과 이삽니다. 그보다는 인수봉 바위 하는 게 좋은 사람입니다. 제 궁극적인 목표가 설악산 바위코스를 전부 개방시키는 거예요. 우리 클라이머들이 언제든지 설악산이라든지 전국의 암장(岩場)에서 암벽등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사실은 기본적인 제 꿈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이런 환경사업을 하면서 환경에 영향을 안 끼치고 산에 다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죠.

○ 한국산악회 이사시라면 현재 하시는 클린운동이 개인적 차원만은 아니지 않나요?

= 사실 거기에도 얘기를 안 해요. 저 개인적으로 합니다. 역시 거기도 단체이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봐요. 물론 단체에서는 개인적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5천 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단체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하자고 하는 거는 쉽지가 않거든요. 저 혼자서 지지고 볶는 게 제일 속편한 것 같더라고요.

○ 지금까지 봉투는 몇 개나 배포됐나요?

= 한 3천장 이상 나갔어요.

○ 경로는요?

= 인터넷카페에 신청을 하면 보내주고, 저한테 개인적으로 전화번호가 오면 보내주고 그렇게 하고 있죠. 사실 이건 어디다가 갖다놓긴 힘들어요. 사용하는 데는 국한돼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하진 않아요. 오직 클라이머, 바위 하는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이지, 제가 나머지 다른 분들에게 이걸 줄 정도의 재력은 없거든요(웃음).

○ 등반가에게 이 물건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정리해 주신다면요?

= 내가 볼일을 보고 가버리면 나는 다시 뒤로 안 오잖아요.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오잖아요. 결국 뒷사람이 되게 불편해지죠. 제가 그런 일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웃음), 이게 해본 놈이 아는 거죠. 뒷사람도 냄새나는 바위가 아니라 향기 나는 바위를 받을 권리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조금 불편을 감수해가지고 처리를 잘해준다면 모든 사람들이 재밌는 암벽등반을 할 수가 있거든요.

○ 오늘 참여하신 것도 그 활동의 일환이시겠군요.

= 그렇죠. 이윤재씨(광주실내암벽 대표)가 이런 청소등반을 해오고 있었는데, 저한테 냄새라든가 변이 문제라고 자문을 구해왔어요. 그래서 제가 “이걸 갖다 뿌리고 묻어라” 조언했죠. 그렇게 해서 한 2년 반 전부터 계속 제가 제공해줬어요. 윤재씨는 선운산 암벽등반지 청소에 함께 하자고 제게 요청해왔는데, 그때마다 다른 산행 스케줄이 있어서 못 왔어요.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오마 해서 내려온 거죠.

○ 인수봉에서도 이런 행사가 있나요?

= 예. 서울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대대적으로 인수봉 청소를 해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평소에 바위에 오줌 싸는 사람들은 저 가루를 오줌 싼 데다 뿌려라 하는 거죠. 그리고 인수봉 꼭대기에 가면 숲이 있는데 거기에도 뿌려둡니다. 비오고 젖고 하면 퇴비증식에 도움이 되니까 나무에도 도움이 되고, 냄새도 없어지고요.

○ 그렇다면 굳이 자기가 대소변을 안 봤더라도 한번 올라간 김에 뿌리고 내려올 수도 있겠군요.

= 그렇죠. 인수봉에 파리가 엄청 꼬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뿌려놓으면 파리가 안 꼬여요. 파리나 모기들이 안 꼬이기 때문에 뿌려놓으면 좋은 거죠. 그래서 자주 뿌리면 좋은데 자주는 뿌릴 수가 없으니까, 적어도 1년에 한번 날을 잡아서 “우리 서울의 인수봉에라도 배려를 한번 하자” 하는 취지에서 하고 있는 거죠.


(전북 고창 선운산 할매바위 등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