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섹션들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영화들이 준비돼 있는지 살펴본다. 주최 측의 영화 소개를 참조하되, 전북교육신문이 주목하는 작품들을 좀더 강조했다.
2. 한국경쟁(장편) 부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는 125편이 출품돼 그 가운데 11편의 영화가 선정됐다. 극심한 빈곤과 고통, 갑의 횡포와 을과 을의 대립,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등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우선 몇 편의 여성영화 및 퀴어영화가 눈길을 끈다.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2020년, 114분, 극영화)는 여성 노동을 다룬다. 여성에 대한 차별에, 하청 업체에 대한 차별까지 겪게 되는, 하지만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 이주 노동자를 다룬 단편 <복수의 길>(2005)과 <소년 감독>(2008)을 연출한 이태겸 감독 작품이다. <소년 감독>은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시선상 수상작이다.
전주 출신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갈매기>(2020년, 75분, 극영화)는 가까운 이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거대 담론에 짓눌려 지내던 변방의 존재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세상의 편견을 물리치고 뒤늦게 자신만이라도 자신의 편이 되기로 한 오복(주인공)이 거듭 ‘각성’해 가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동안 조·단역으로만 낯이 익었던 배우 정애화의 연기 또한 감동에 힘을 더한다.
<담쟁이>는 성소수자와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사고로 엄마를 잃은 소녀가 이모, 그리고 이모의 파트너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되묻는다. 단편 <말할 수 없어>(2017)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인도 뭄바이 퀴어영화제 등에 참가한 바 있는 한제이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 <갈매기> 스틸
<괴물, 유령, 자유인>(2020년, 78분, 극영화)도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영화다. 17세기의 스피노자와 현대의 성소수자를 연결하며 진정한 ‘자유’의 길을 모색한다. 도전적인 영화 언어가 돋보이며, 신파적 요소나 사회에 대한 고발이 없는 새로운 감수성의 퀴어영화다. 감독 홍지영은 <스피노자의 편지>(2018)를 포함해 5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아모르, 아모르 빠티>(2016)로 2016년 충무로단편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빈곤 문제 또한 여러 편이 다루고 있는 주제다. <사당동 더하기 33>(2020년, 124분, 다큐멘터리)은 동국대 조은 명예교수가 지난 33년 동안 한 가족의 삶을 추적한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다. 사당동에서 살다 재개발 사업으로 쫓겨나 상계동에 새 둥지를 튼 한 가족을 꾸준히 추적해 온 다큐로, <사당동 더하기 22>(2009)의 후속작이다.
영화 <홈리스>(2020년, 83분, 극영화)는 주거 문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절망감을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담아낸 영화다. 한결과 고운은 갓난아이 우림을 키우며 살아가는 어린 부부. 얼마 안 되는 전 재산을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 당해 집도 절도 없는 신세다. 결국 이들은 짐을 끌고 다니면서 찜질방에서 매일 밤 잠을 청한다. 한결은 스쿠터로 배달 대행 서비스를 하고, 고운은 우림을 안은 채 전단지를 붙이지만 두 젊은이의 힘만으로 살아갈 방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홈리스>는 주거 문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절망감을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담아낸 영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머물 자리 한 칸을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묘사한다. <엘리제를 위하여>(2018)를 연출한 임승현 감독의 첫 장편이다.
▲ <담쟁이> 스틸
<빛과 철>(2020년, 107분, 극영화)은 어느 밤 벌어진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삶의 한계점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살고 있는 두 여성이 고통의 근원이 상대방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렸다. 감독 배종대는 <고함>(2007), <계절>(2009), <모험>(2011) 등의 단편을 연출했다. <빛과 철>은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정연경 감독의 <나를 구하지 마세요>(2020년, 96분, 극영화)는 경제적 빈궁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모녀의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비추는 영화다. 신동민 감독의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0년, 73분, 극영화)는 자질구레한 삶의 흔적들을 통해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김나경 감독의 <더스트맨>(2020년, 91분, 극영화)은 노숙자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한 젊은이가 예술을 통해 새 삶의 가능성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 영화다. 김종재 감독의 <생각의 여름>(2020년, 82분, 극영화)은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한 여성의 나날을 그린다. 시작(詩作)을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좌충우돌하면서 한 뼘 자라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