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언어 하나를 익히면서(영어를 제외하고) 많은 생각을 한다. 언어와 사고과정이라고 해야하나.
그 동안에도 그런 생각은 많이 했다.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그 무언가가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그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아서인가? 예를 들면 김밥꼭다리같이 무엇인지 다들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칭하는 명칭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건 명명의 부재이겠지만, 조금 더 추상적인 감정이나 표현들은 우리가 서로 느끼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도 없고 그게 나만의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디테일한 무언가로 규정짓고, 명명하고, 그게 답답할때는 추상화시키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물론 어학원에는 한국인들도 있고 한국친구들과 통화도 한다. 그런데 일상에서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그 감정을 말로 뱉을 수 없는 상황은 뭔가를 고립시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언어가 왜 필요한지. 생활언어가 아니라 능숙한 언어가 왜 필요한지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와 공간, 시간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그 감정 속 공간과 시간 즉 나를 에워싸는 환경을 표현하는 것은 내 몫이지만, 그 공간에서 그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가 필요하다.
그래, 때로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 눈빛이나 몸짓, 움직임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언어로 공감할 때 우리는 말초적인 무언가의 공감이 아닌 이성과 사고의 공감대를 느끼는 게 아닐까? 정교하게 듣고 정교하게 말하고 싶다.
아이가 언어를 잘 익힌다는 것은 뭔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새로운 것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른이 되고 나면 그게 뭘 말하는 건지 뻔하고, 그 뻔한 것들의 철자를 외우는 지루한 과제만 남는다. 조그만한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익히면 그것이 신기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틀리고 다시 틀리는 것을 몇번이나 반복했을 것이다. 그것을 슥 한 번 읽고 쓴다고 외워지길 기대했던 나의 오만함을 지우고 무던한 반복에 익숙해져야 겠다. 언어를 익히고 외우는 것이 새롭고 재밌어 죽겠다고 말할 만큼 어린 나이가 아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익히는 걸 잘 못한다. 그냥 익히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서 몇 번이고 같은 것을 보고 반복하는 것을 잘 못한다.
이건 뭐랄까. 옆에서 떠먹여주는 사람들도 없으니, 지루한 것을 찾아 공부해야 하는 꼴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아주 잘 마치고 싶다. 적어도 이것을 해야 할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이곳에 존재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