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의 핵심인 자법인 설립 허용을 ‘우회적 민영화’로 규정하고 그것이 한국의 의료공공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소책자가 발간됐다.
사회운동단체인 <사회진보연대>가 지난 2월말과 3월 중순 초판과 재판을 연달아 발간한 『의료민영화, 재벌이 건네는 독약』이 그것.
철도민영화 반대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정부는 또 다른 민영화 카드를 내밀었다. 바로 ‘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다.
여기에는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 △부대사업 범위 대폭 확대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 허용 △법인약국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언뜻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모두 거대 자본이 보건의료 부문에 투자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의사, 약사, 병원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보건의료인들은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민영화, 의료영리화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자법인 설립이 허용되어 거대 자본이 병원에서 발생한 수익을 병원 바깥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을 얻게 되면, 보건의료 부문에서도 수익성을 제1의 기준으로 하는 영리 중심의 경영이 더욱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 의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도 대형병원들은 고수익을 위해 의사들에게 CT나 MRI 회전율을 높이라고 주문하고, 환자들은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불필요한 진료비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효율성만 앞세우다 보니 의료서비스의 질과 직결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3~6배 많다. 이렇다 보니 간호사 10명 중 3명은 1년 만에 병원을 그만두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데 재벌들의 보건의료부문 진출이 확대되고 영리 중심의 경영이 강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소책자의 진단이다.
의료민영화가 이루어지면 재벌들은 보건의료 산업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익의 원천은 오직 환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민영화, 의료영리화는 ‘재벌이 건네는 독약’이다.
소책자 1부에서는 투자활성화 대책의 핵심인 자법인 설립 허용과 부대사업 범위 확대를 ‘우회적 민영화’로 규정하고 그것이 한국의 의료공공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2부에서는 병원 인수합병과 법인약국 허용 정책이 재벌의 병원 체인점, 약국 체인점 운영을 밀어주기 위한 것이며 의료민영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한다.
3부에서는 원격의료 문제를 다뤘다. 정부의 홍보와 달리 원격의료 도입으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부풀려져 있고 그 의학적 효과는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동네의원 몰락으로 인해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등 전반적인 보건의료체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의료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행동함과 동시에 보다 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 보건의료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은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와 ‘영리병원 금지’다. 정부는 재벌의 이익을 위해 바로 이 ‘두 개의 기둥’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소책자는 모든 시민의 건강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막아내고 ‘두 개의 기둥’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의사, 간호사, 청소노동자, 시민들은 2012년부터 시작된 지역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2014년 2월 마드리드 지역정부가 공공의료기관 민영화 계획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게 되면서 승리를 거뒀다.
수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한 의료민영화 저지 시위에는 ‘하얀 물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민들은 “Si, se puede!(그래, 우린 막을 수 있어!)”를 외쳤고, “투쟁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을 실천적으로 극복했다.
의료인을 포함한 병원노동자들, 환자,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친다면 의료민영화를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는 게 이 소책자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