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학 석좌·초빙교수 제도가 정치인과 고위공무원, 기업인 등의 스펙 쌓기 통로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이는 가운데, 전북대학교가 특히 이 제도를 심각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배재정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31개 4년제 일반 국·공립(법인 포함) 대학의 석좌교수는 71명, 초빙교수는 1,145명으로 전체 전임교수 1만6,866명의 7.21%에 해당했다. 학교당 39.23명꼴이다.
반면 전북대의 석좌·초빙교수는 170명(석좌7, 초빙163)으로 전임교수 대비 16.7%에 달했다. 전국 최고수준이다. 다음으로 심각한 곳은 부산대 136명(전임교수 대비 11.45%), 강원대 74명(7.68%), 서울대 106명(5.24%)으로, 4개 대학 모두 별도 정원 없이 운영하고 있었다. 얼마든지 숫자를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조사대상 31개 국립대학 중 석좌·초빙교수가 없는 공주대와 한국체육대를 제외한 29개 대학에서 전문강사나 연구원이 석좌·초빙교수로 임용된 경우는 63.7%에 불과했고, 나머지 36.3%는 사기업 임원, 고위공직자, 정치인 등이 차지했다.
전북대는 ‘기업인, 고위공직자,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등이 오히려 114명이나 됐다. 3명 중 2명꼴이다(67%). 그 뒤를 이은 학교는 강원대 42명(57%), 부산대 46명(34%), 서울대 36명(34%) 등이다.
29개 대학의 석좌·초빙교수를 출신별로 분류해 살펴보면 ‘전문강사·연구원’이 63.7%, ‘사기업 임원’이 13.2%, ‘고위공직자·공공기관임원 및 공무원’이 11.2%, 정치인이 3.6%, 언론인 2.5%, 군 장성 1.7%였다(파악불가 4.2%).
(자료제공=배재정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
(자료제공=배재정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
전북대의 경우 170명의 석좌·초빙교수 중 사기업임원이 37명, 정치인 35명, 언론인 23명 등이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 석좌교수 사례로 이홍훈 전 대법관은 2011년 10월 임용 이후 2014년 10월까지 특강 8회 강의료 750만원을 챙겨갔고, 강의는 전혀 없었다. 김백준 전 대통령실 총무기획관 역시 강의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해마다 연봉 6,000만원씩을 챙겨갔다. 2012년 6월 임용 이후 특강 4회가 전부였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도 강의 없이 연봉 3,600만원씩을 챙겼다. 교수 임용 이후 특강만 6회 진행했다. 김호열 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강의 없이 연봉 3,500만원씩을 챙겨갔고, 2013년 1월 임용 이후 특강만 8회 열었다. 김성중 前 노동부 차관의 경우 강의 없이 무급으로 석좌교수직만 유지했다.
전북대에 초빙교수직을 갖고 있는 기업인, 정치인, 고위공직자, 언론인 등은 대개 보수는 없지만 강의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 초빙교수 사례는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및 대변인, 정헌율 전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 최규식 전 국회의원, 김춘진 국회의원, 김승수 전주시장, 이한수 전 익산시장, 이환주 남원시장, 박성일 전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이경옥 전 행정안전부 차관보, 김명한 前 국가보훈처 전주보훈지청장, 김명자 임실군의회 의장, 김홍식 전북도시가스 대표이사, 백성일 전북일보 수석 논설위원, 이병문 한국방송공사 전주방송총국 국장, 이보근 동아건설사장, 임병찬 전북도민일보 대표이사, 신효균 전주방송 사장 등이다.
(자료제공=배재정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
한편 초빙·석좌교수 중 연구자·전문강사 외 ‘기업가, 정치인, 고위공직자, 공기업임원, 공무원, 언론인’ 등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나 임용된 교수들 442명만 따로 뽑아 분석한 결과, 29개 대학 평균 주당 강의 시간은 2.5시간에 불과했다. 특히 부산대 0.3시간, 전북대 0.4시간, 서울대 1.6시간, 강원대 2.9시간이었다.
게다가 442명의 58%에 해당되는 257명은 정규 강의를 하지 않았다. 특히 전북대는 114명 중 109명(96%)으로 월등히 많았고, 부산대 46명 중 38명(83%), 서울대 36명 중 22명(61%), 강원대 42명 중 19명(45%) 순이었다.
정규강의가 아닌 특강을 한 관련자들이 있었지만 그 수준 역시 미미했다. 분석 결과 석좌·초빙교수 1인당 강의횟수는 부산대 0.04회, 전북대 0.05회, 서울대 0.18회, 강원대 0.03회 등이었다.
전북대의 경우 초빙교수 163명 가운데 22명은 정규강의를 했고, 주당 평균 강의시간은 1인당 9.9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141명은 전혀 강의시간을 배정받지 않았다.
한편 석좌·초빙교수의 경우 별도의 연구계획서나 연구 성과물을 제출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렇다면 무늬만 교수인 이들 석좌·초빙교수가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대학 입장에서는 교육이나 연구와는 관계없는 퇴직 고위공직자나 공무원, 기업인, 정치인을 임용해 이들에게 ‘교수 경력 쌓기’ 기회를 마련해 주고, 반대급부로 이들을 활용해 대외활동과 교원확보율 등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석좌·초빙 교수에 대한 강의료 등 급여는 대부분 학교회계나 기성회계에서 충당되지만 서울대의 경우 특정 기관이나 기업으로부터 기부 받은 ‘발전기금’을 통해 지원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대 역시 외부기관이나 개인의 기탁금·부담금 또는 이를 바탕으로 조성된 기금을 재원으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학교입장에서는 기부금을 내는 기관이나 단체가 원하는 사람을 초빙교수로 임용해 주기만 하면 별도의 인건비가 소요되지도 않을 뿐더러 기부금까지 받을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임용한 초빙교수들을 대외협력 활동에 적극 활용하고, 학과 정원 조정의 기준이 되는 교원확보율까지 높일 수 있어 1석3조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배재정 의원은 “이러한 대학의 행태는 학교의 이익과 교수자리를 맞바꾸는 일종의 장사로, ‘교수자리 팔아먹기’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배 의원은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석좌교수·초빙교수 제도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며 “△석좌교수나 초빙교수를 임용할 때 반드시 인사위원회 등의 심의를 받도록 하고 △대학별 사정에 맞도록 운용규정 등을 통해 정원을 두도록 하며 △강의 최저시수를 두고, 연구목적일 경우 연구 성과물을 제출해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