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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다시 본 케테 콜비츠


... 문수현 (2014-11-06 13:47:51)

올해로 벌써 20회째를 맞은 광주비엔날레. 그동안 관람은 단 한 차례였고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서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관람은 굳게 마음먹은 상태에서였다. 꼭 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Kathe Schmidt Kollwitz, 1867~1945)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벌써 23년 전. 『케테 콜비츠: 천재 여류판화가의 사랑과 분노의 자화상』(카테리네 크라머, 실천문학사, 1991)이 번역돼 나왔을 때였다.

책 속에는 그녀의 판화작품 중 44점이 수록돼 있고, 그녀에 대한 전기적 기록과 일기, 작품에 대한 해설도 포함돼 있었다. 작품을 통해 그녀는 당시 독일 민중이 전쟁과 기근으로부터 겪는 고통을 모성애를 바탕으로 형상화했다. 콜비츠 자신이 두 차례의 세계전쟁에서 두 아이를 잃은 어머니이기도 했다.

당시 국내 한 잡지의 기자는 케테 콜비츠에 대한 기사에서 그녀의 작품을 ‘흑백의 절규’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콜비츠의 많은 작품들은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자연의) 절규’를 떠올리게 한다.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닮아있다.

하지만 콜비츠가 작품에 담은 좌절은 개인적이지도 막연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절규’ 속 인물의 놀란 둥근 눈과 콜비츠의 작품 속 인물들의 흰자위가 번뜩이거나 아예 그림자에 묻힌 눈은 확실히 달랐다. 거기에는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있지만, 동시에 묵직한 분노와 이면의 사랑이 짙게 묻어있었다. 그 작품들이 주는 ‘위대한 슬픔’의 감동은 늘 나와 함께 해왔다.

십여 년 만에 비엔날레를 방문하기 전 인터넷사이트에서 콜비츠 전시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광주비엔날레 공식 사이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을 그려온 여류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 ‘폭동’, ‘배고픔’, ‘희생자들’, ‘살아남은 자들’ 등 49점이 광주에서 첫 선을 보인다.” 그렇다면,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도 꽤 되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광주로 향했다.

개막 석 달이 가까우면서 어지간한 특별 행사들이 막을 내린 광주비엔날레는 한산한 편이었다. 한 예술강사의 안내로 작품을 감상하는 장애인 청년 10여명이 보였고, 두세 명씩 짝을 이룬 젊은이들이 주된 관람층이었다.

콜비츠의 작품들은 매표소에서 시작하는 관람 동선에서 가장 먼 광주시립미술관 3전시실에 전시돼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쉽지만, 본관부터 화살표를 따라 차근차근 비엔날레 전시작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1~5전시실을 차례로 걷는 동안 눈에 띄었던 작품들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비엔날레 측의 작품소개를 참조했다).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 1985, 혼합매체 그림, 388.1×457.2cm, 에드워드와 낸시 레딘 키앤홀츠 부부 협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인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는 카오스에 빠져있는 현세를 거꾸로 묘사한 작품이다. 백열등에 둘러싸여 있는 화살 모양의 무대 위에 세 군인의 행진은 매우 괴기스럽고 카니발적으로 묘사됐다. 국가권력(공권력)에 대한 풍자 의도가 강한 작품이다.


(리콜(Recalled), 1998, 종이에 아크릴·패널, 145.6×206cm, 테츠야 이시다)

테츠야 이시다는 ‘리콜’을 통해 일본의 경제적 혼돈 시기(버블 경제로 인해 잃어버린 10년)에 성장하면서 느꼈던 심리적 불안감을 표현했다. 그는 젊은이층,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남성들의 자화상에서 육체적으로 소비재와 연결돼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인간의 고립, 불안감, 정체성 혼란, 폐쇄공포, 고독 등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림 속의 휴머노이드 합성물은 삶의 의미가 결여된 현대인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변화의 계절, 캔버스에 유화, 야마시타 키쿠지(1919-1986))

야마시타 키쿠지의 작품 ‘변화의 계절’은 전후 재건 시기의 일본에 대해 직접적인 정치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마치 장난감 상자가 엎어진 것처럼 시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고, 이 시신들의 몸 안에서는 나무 인형의 신체 부위들이 보인다.

일본 문화에서 유래한 도상해석학, 그리고 미국 국기와 코카콜라 병 등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초현실적으로 결합되면서 미국에 대한 일본의 위상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키쿠지는 수많은 작품 속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개입, 그리고 그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득을 얻는 일본인들을 지속적인 주제로 다뤄왔다.


(자매들이여 강인해져라!, 2012, 안드레아 바워스)

1965년 미국 오하이오 윌밍턴 출생의 작가 안드레아 바워스(Andrea Bowers)의 ‘자매들이여 강인해져라!’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인 ‘파리코뮌의 기억’(2013), ‘자본주의 흡혈귀’(2013), ‘기후정의’(2013)와 함께 전시된 카드보드 작품들이다.

바워스는 주로 비디오와 사진, 발견된 덧없는 것, 드로잉을 통해 자신과 함께 일한 활동가들의 역사를 기록하며, 또한 20세기 후반의 페미니즘, 비폭력 불복종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제시하는 작가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작품은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었다. 하지만, ‘세월오월’이 전시될 예정이던 벽면에는 작품전시의 불발을 항의하는 작가들의 규탄메시지가 대신 걸려있다. 그리고 그 옆면에는 판화가 이윤엽의 ‘대추리에서 세월호까지’가 전시돼 있다.




(대추리에서 세월호까지, 2014, 100×100cm, 이윤엽)

시립미술관 2층 3전시실에는 루쉰의 판화작품들과 함께 48점의 콜비츠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광인일기’, ‘아큐정전(阿Q正傳)’ 등을 쓴 중국 문학가 겸 사상가인 루쉰은 케테 콜비츠의 판화를 보고 본격적인 목판화 운동을 하게 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실직 노동자’ ‘기습’ 등 당시 시대상을 목도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또한 미국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가 벤 샨의 작품 ‘노동자에게 예방접종하는 의사’ 등 22점도 3전시실에 함께 전시돼 있다.

다음은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콜비츠의 판화작품 가운데 일부다. 전시작 중에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콜비츠가 전달하는 반전과 평화, 그리고 숭고한 사랑의 메시지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광주비엔날레는 9일 폐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