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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소릴 다 하네


... 문수현 (2014-01-29 22:28:21)

소리꾼 김대일의 판소리 제목이다. 눈치 있는 독자는 제목과 이 한 줄에서 이미 감을 잡았을 법하다. 판소리라면 다섯바탕이 전승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수궁가, 별주부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것은 판소리 수궁가 얘기다.

그런데 그냥 판소리가 아니고 발라드 판소리란다. 게다가 판소리 치고는 제목이 ‘별나다.’ 그렇다면 작가는 독자의 이런 추리까지 미리 예상했을까? 그리고 이런 추리를 의도했을까?

‘별(鼈)소릴 다 하네’는 우진문화재단의 기획공연 ‘우리소리 우리가락’의 100번째 공연이다. 지난해 11월 우진문화공간에서 사흘간 공연했고 관객들이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는 극적인 긴장감을 높이고 예술성도 보강해서 2월 7일부터 23일까지 장기공연에 들어간다.

김대일이 판소리를 작창(作唱)하고 단독 출연한다. 김대일은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했다.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 장원과 국립국악원 국악경연대회 성악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조소녀 명창에게 사사했다. 판소리 퍼포먼스그룹 ‘미친광대’ 단원이다.

지기학 미친광대 대표가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지 대표는 연극배우이자 춤꾼, 소리꾼 그리고 창극 연출가다. 지기학과 미친광대는 창단 이후 판소리 다섯바탕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한편, 젊은 작곡가 김백찬이 ‘고래의 눈 알’, ‘똥 밟았네’, ‘살다 살다 별소릴 다 듣네’ 등 풍자와 해학이 담긴 국악 발라드 7곡을 만들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김 씨는 널마루무용단의 음악을 많이 하는 등 전북과 인연이 깊은 국악 작곡가다.

이밖에 기타 박석주, 타악 황상현, 피리 허진, 소리와 북 박추우 등이 출연한다. 정윤정이 무대소품디자인을 맡았고 송은주가 의상디자인을, 공연화가 조명디자인으로 무대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하얀 변기가 놓여있는 화장실 한 칸. 모모시의 경찰서 김형사가 엉뚱일보 주기자와 은밀한 통화를 나눈다. 김형사가 주기자에게 특종 하나를 흘린다. 공기청정기 회사 ‘작은 숲속’의 영업사원인 퇴대리는 아내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퇴근길에 접촉사고를 낸 퇴대리는 거대기업 ‘파라다이스 용궁’의 별(鼈)부장을 만나게 된다….

대본을 쓴 연출자 지기학씨는 “간 나오게 간신히 살다 간을 적출당할 신세가 된 퇴대리에게서 벼룩의 간을 빼내 먹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초상을 본다”고 작품의 메시지를 설명했다.

박영준 제작감독은 “이번 작품은 초등학생에서 어르신까지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공연”이라며 “재미있는 연극 공연으로 생각하고 관람해 달라”고 말했다.

공연시간은 80여분이다. 관람문의는 우진문화공간으로 하면 된다(063-272-7223).



다음은 연출자 지기학씨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위 사진 오른쪽. 왼쪽은 김대일씨).

문) 대본을 현대적으로 창작했다. 창작의도가 뭔가?

지) 이 작품은 판소리 수궁가를 모티브로 했다. 수궁가는 판소리 중에서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그런데 수궁가는 한자숙어가 빈번히 등장하는 등 사설이 굉장히 어렵다. 초한지 정도 능숙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사설과 판소리 자체가 그런 면이 있다. 이즈음의 음악들과 판소리를 만나게 해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었다.

문) 발라드 판소리라는 게 뭔가? 본래 그런 장르가 있나, 아니면 이 작품에 한해 명명한 것인가?

지) 이번 공연의 양식적 컨셉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이름이다. 발라드는 본래 짧은 이야기가 있는 시나 노래를 뜻한다. 임진택 선생은 ‘담시’ 또는 ‘단형의 판소리’라는 표현을 했다. 한편, 발라드는 음악적 형식으로도 쓰인다. 이 작품에서 발라드란 말은 문학적 구조와 음악적 구조를 모두 차용해 같이 쓴 것이다.

문) 이런 시도에 어떤 의미가 있나?

지) 판소리의 선율 구조는 지금의 정서, 젊은 정서를 담기 어렵다. 그러기에는 음악적 구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보조장치로 다양한 음악이 들어와 큰 강을 이룬 것이다. 기존의 소리만 전승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이런 작업들이 오히려 전통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판소리는 열려 있는 음악장르였고, 다양한 음악 요소를 수용하며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즈음 음악이 판소리에 들어오는 건 오히려 당연하다.

문) 소리꾼 김대일과 작곡가 김백찬을 소개한다면?

지) 소리꾼으로서 김대일은 작창(作唱) 재능을 가진 유능한 인재다. 판과 소리를 새로 짜는 능력이 있다. 판소리 요소에 아니리와 창이 있는데, 이 같은 기존 소리만 전승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과거에 소리꾼은 요즘말로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였음을 알아야 한다. 김백찬은 서울이 주 무대지만 전북대를 다녔고, 널마루무용단 음악도 많이 했다. 소리축제 ‘광대의 노래’(신재효를 다룬 소리극) 음악도 맡아 했다. 그만큼 전북과 인연이 깊은 인재다.

문) 국악기뿐 아니라 서양악기인 기타도 등장하는데….

지) 기타는 편하게 접하는 악기다. 아프리카 기원의 타악기인 젬베도 연주된다. 기본에 국악이 깔려 있지만, 이런 악기들이 합해져서 관객에게 쉽고 편하게 전달된다. 즐길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한다.

문)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 ‘미친광대’에 대해 소개해 달라.

지) 미친광대에서는 현재 김대일씨를 포함해 4명의 소리꾼이 나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가 너무 전승에 치우치는 게 답답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다. 우리 시대에 맞는 소리판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만났고 ‘미친광대(美親廣大)’라고 명명했다. 적극적으로 시대와 소통해보자는 의미다. 글자 그대로 “미와 함께 한다”는 뜻도 있지만 요즘은 그걸 강조하진 않는다. 우리 활동을 그 의미에만 한정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문) 공연 기간에 다른 행사는 없나?

지) 소리꾼 김대일이 공연 때 CD를 발간한다. 앨범타이틀은 ‘김대일이歌 부른 노래謠’다. 김백찬이 작곡하고 내가 작사한 소리곡들을 담았다. 국악 발라드 느낌의 곡들이고 심청가, 적벽가의 눈대목(주요대목)을 미디음악으로 만들었다. 8곡 정도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