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 운동 20여년을 결산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성폭력예방치료센터는 16일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에서 여성운동계 인사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반성폭력 운동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이미경 이화여자대학교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성폭력 피해생존자 권리의 법제화 배경에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말하기가 있었다”며 “이제는 성폭력 관련 법과 제도들이 실제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지 구체적인 모니터링과 조사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기존의 법과 정책이 여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보호와 지원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제는 피해생존자의 권리보장과 역량강화,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나아가 △인권감수성과 전문성 등 담당자 교육 강화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피해자 지원 예산의 증액과 안정화 △민관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 △처벌강화보다 처벌가능성 높이기 △성폭력피해자 지원에 관한 중장기 계획을 포함한 청사진 마련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지영 성폭력예방치료센터장은 토론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법과 제도 등 많은 형식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폭력상담소가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하지만 앞으로 20년은 내용의 변화도 함께 이루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 센터장은 또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위주의 인식에서 탈피해 피해자 보호를 위해 더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반성폭력 20년 운동에도 법제화되지 않은 영역에서 피해자 인권이 지켜지도록 감시하고,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좀 더 많은 요구를 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또 다른 토론자로 나선 이윤애 전북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은 제도와 정책, 사회적 인식, 운동참여자 등을 점검하면서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에 대한 반성적 평가를 내놨다.
이 부소장은 “민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피해자 지원제도가 짧은 시간에 정착된 것은 높이 평가된다”면서도 “피해자가 도덕적·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2차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강제규정이 미흡하고, 예방을 위한 체계 또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안전에 대한 권리’와 ‘인권침해’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이 부소장은 한편 “지난 30여년 간의 반성폭력 운동사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커다란 성과는 피해생존자들의 성장”인 반면 “관련시설과 종사자들의 증가했지만 생계형 시설 설치와 직장개념으로 종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반성폭력 운동이 제도권의 틀에 안주하면서 활동 초기의 운동성을 잃어간다는 지적이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조선희 전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여전히 낮은 성폭력 신고율, 여성의 성폭력 두려움 증가, 깨지지 않는 성폭력 통념 등 성인식 변화가 매우 더딘 상황”이라며 반성폭력 운동의 관점과 노선을 재구성하자고 제언했다.
조 대표는 먼저 “피해자 지원활동을 중점에 두면서 성폭력 문제를 개인적 접근으로 한정하는 것은 젠더 권력을 더 강화한다”며 “성차별 문화와 인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활동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담론 △아동성폭력, 장애인성폭력, 성인성폭력 등을 위계화하는 발상 △피해자, 생존자, 경험자 등 이름짓기의 혼란 등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조 대표는 이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피해자 예방교육보다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예방교육 매뉴얼 제작과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폭력 방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폭력 범죄 신고율을 높이는 방안 모색 △가해자에 대한 중형주의보다 인식변화를 통한 예방활동 확대 △지역사회 안에서 성범죄 정보의 대안적 활용 △공탁 감형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 등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조원상 전주덕진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과 황지연 팀장, 서난희 전주시의원도 참석했다.